마라 같은 인생 속에서

나오미, 마라, 룻, 보아스, 하나님의 시간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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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고통.

두려움 앞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락.이라는 이름의 나오미는

이제 자신을 괴로움을 뜻하는

마라라고 부른다. (룻1:20)

흉년을 피해 떠나간 모압에서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죽었다.

광야 속에서 그가 얻은 것은

한 사람, 며느리 룻이었다.

감당해야 할 시간과 대우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사람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봐준 사람.

진심을 이해해준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2:12)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지만

우연히.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룻도, 보아스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시간,

룻의 현실은 오늘 먹을 양식조차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절박했다.

그래서 우연히 찾아간 밭이다.

룻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4:22)

여호와의 총회에 들지 못한다는

모압 여인을 통해 다윗 왕조를,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만들어졌다.

하나님 나라의 시간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오늘의 절박함으로

우연히 걸어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나기를.

이런 우연한 시간의 연속이지만

결국 시간은 사람을 자라게 만든다.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시행착오도 겪는다.

마라 같은 인생 속에서

문제 가득한 오늘이지만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한다.

'문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마라 같은 인생속에서

나오미라는 이름이 회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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