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길을 걸어갈 때, 질문

엘리의 두 아들과 한나의 기도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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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한

토대를 전부라고 생각한다.

흔히, 확증편향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하는데

'거봐. 내 말이 맞잖아.'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내가 경험한 세계 속에서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내가 동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그 생각을 관성을 따라 진행한다.

일부러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사고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선을 넘었다.

제사장으로 제사를 멸시했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기에 이르렀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는

태어나면서 가진 소유이며

자신의 영역을 활용할 기회라고

여겼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위임한 자리였다. (삼상2:27)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이 둘은 이율배반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가 하나를 비인격적으로

떠미는 형태가 아니다.

감정과 이성과 정서를 따라

당연한 듯 선택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선택 속에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내버려 두기도 하신다.

그래서 엘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걷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2:30)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

하나님의 시간은 끝이 있다.

무엇이 복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엘리의 가문에는 앞으로

환난과 함께

노인이 하나도 없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 (삼상2:31)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여호와께 자신의 심정을

통곡하며 기도하다

시대 속에 아파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사무엘이 자라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3:19)

어둠 속에 빛.

그 빛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무엇이 복인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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