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말하는 의미

인내와 오래 참음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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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을

가까운 이들과 가끔 말한다.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대해야 옳은 일인가?

이 질문을 십수 년간 이어가고 있다.

예의에 맞지 않는

무례한 일들을 당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생각한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상대의 부당함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들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

부당하거나 무례함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할 경우

나의 정당함은 증명할 수 있겠지만

내 목적이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에

있지 않아서 생각에만 머무른다.

이미 타인에게 수없이 당했을

상처와 아픔과 외면에

결정타를 날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무관심은 나를 해하려

하는 자에게 용서의 방법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나의 정당함을 포기하려는 선택이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 3:1)

다윗은 그의 대적을 피해

자신의 성에서 급하게 도망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대적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다.

성경은 이 문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들의 반역에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 피난길에 올랐고

다음을 도모했다. 그러나 광야에

머무는 동안 잃었던 그의 믿음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고

주님의 인자를 구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곤궁한 시간에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은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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