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만 기구한 게 아니라

정리해야 할 초기 설정값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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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시에는

구원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있다.

그런데 그의 소망의 바닥은

사망의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뼈가 떨릴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 떨릴 만큼

그는 사망 중에 거닐며

탄식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이불을 적신다. (시6:2-6)

주변에 악을 도모하고 행하는 자,

그의 모든 원수들은 (시6:9-10)

또 얼마나 많은가?

굳이 본문 중에만 국한하지 않아도

그의 시편에는 여러 빌런들이 등장한다.

그의 인생에만 특별한 것일까?

인생을 다 경험해 보지 못한

정의는 위태하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삶은

곤궁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상황은 나아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하지만

단편적이지 않다. 복잡한 층위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갈망한다.

우리가 그저 인간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의 친 아들조차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와의 철저한 단절을 맞보았다.

작년 캘린더의 주제를

디폴트 값으로 지었다.

회복의 의미를 담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곤궁한 삶이

노력이나 의지로 벗어날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님을 기본 세팅 값으로

전제해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이 있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웃음과 멋진 이미지는

연출이거나 인생의 아주 짧은 단면일 뿐이다.

진실을 마주 대하면 우울할 수 있지만

구원은 모든 환상과 거짓과 가식들이

깨어져야 비로소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진실의문 #인생은고해 #구원의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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