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큐온 5기 마지막 선정 도서 < 니체의 삶 >을 읽고 나는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헤름 니체'는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서양의 오래된 전통을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인생 그리고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삶과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책의 본문 내용을 보게 되면 니체는 문헌학자로서의 인생을 불행하게 느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니체는 문헌학자로서의 인생이 점점 불행하게 느껴졌다. 바그너와 만나고 11일 뒤 친구에게 쓴 편지에 자신과 동료 문헌학자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 시대의 문헌학자들은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족속들이라네. 두더지같이 빠르게 번식하고, 축 늘어진 볼과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벌레 같은 것에 집착하며 즐거워하지. 하지만 정작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진짜 문제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네."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
독자로서 나의 생각 1
나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니체가 뒤늦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온전히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시궁창이 되어버린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자책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신은 죽었다'라는 말도 어쩌면 그러한 당시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닐까?
니체는 살아생전 그리스도교의 도덕 그리고 합리주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책의 본문 내용을 보더라도 니체의 신앙심은 아버지를 따라서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굳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니체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아래 성장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 우상의 황혼>과 < 도덕의 계보> 통해서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가상 세계만 좇는 기독교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
니체의 신앙심은 여전히 굳건했다.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의 견신례는 그가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에 열렸다. 1861년 사순 제4주일에 열린 견신례로 니체는 그의 곡예 솜씨를 묘사했던 파울 도이센과 새로운 유대 관계를 맺었다. 두 예비 목사는 나란히 제단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축성을 받았다. 도이센과 니체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죽겠다고 함께 다짐했다.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
'기독교에 대한 저주'라는 부제가 붙은 < 반 그리스도>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짧고 강렬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책이다. '반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반 그리스도'라는 의미도 되고, '반기독교인'이라는 의미도 된다. 니체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하되, 그의 이름으로 성장한 기독교라는 종교는 혹독하게 비난한다. 많은 부분이 그가 이미 < 우상의 황혼 >과 < 도덕의 계보 >에서 말한 내용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가상 세계만 좇는 기독교의 모순을 또 한 번 꼬집는다.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
독자로서 나의 생각 2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인간은 신에 대하여 알아가고 믿음을 갖기 이전에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우상화하고 종교적인 행위에 치중을 한다. 이러한 우려적인 부분은 성경말씀에도 언급되어 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에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 출애굽기 32장 1절-4절 >
그러한 모습을 지켜본 모세는 결국 하나님의 계시가 새겨진 돌판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습들은 과거 그리고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종교가 진정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더 자세한 성경말씀을 보고자 한다면 출애굽기 32장에서 33장을 보는 것을 권해드린다.
나는 책 < 니체의 삶 >을 통해서 니체가 무엇을 연구하였으며 그가 주장하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문득 과거에 '안다리 박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여러 철학자들의 문헌을 읽고 값비싼 비용을 들여서 강연을 들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 그리고 해결방법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 네 자신이 되어라. -
< 즐거운 학문 > 제3부 270절
니체는 인간을 '병든 동물'로 묘사해다. 모든 것이 주어짐에도, 절대 채워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끝없이 갈구하는 욕구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영원한 불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이 과학과 진화론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니체가 지적했듯 과학의 의미는 종교가 아니고, 진화는 도덕적인 길과는 거리가 멀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좋고 나쁨'은 '더 유용하거나 덜 유용하다'는 의미이지 도덕이나 윤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신은 죽었다.' 그는 그 말을 내뱉음으로써 당연한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지 못하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그동안 누구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진실을 말하고자 하였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지난 2천 년간 문명을 이끌어온 법칙에 어떤 도덕적 권위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이 문명의 체계를 구축해온 도덕률을 무효로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이 가장 중요한 형이상학적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까? 만약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다면, 모든 것의 궁극적 의미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종교 없이 살아갈 힘을 얻은 인간은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니체가 본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해 자신들이 믿어온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따르는 우상에서 진실한 소리가 울리는지 망치를 휘둘러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철저히 현대인의 몫이다. 그가 답을 주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답이 있다면 그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고,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도 우리가 직접 찾아야 한다. 그것이 위버맨쉬를 이뤄내는 진정한 길이다. 어떤 이는 종교로 과학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종교적 신념은 거부하지만 도덕적 가치는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자기혐오와 르상티망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인간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룬 위버맨쉬로서 진정한 성취감을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의 목적에서 즐거움을 찾고, 존재만으로도 장엄함을 느끼며, 삶의 유한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인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변질되어 그렇게 훌륭하고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영원불변의 문제를 제기한 그의 훌륭한 능력이 빛을 잃게 된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진리를 철저히 탐구하고도 결코 '아마도'라는 표현을 넘어서는 답을 제시하지 않은 그의 노력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