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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pr 22. 2023

능력주의가 과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책 < 능력주의 두 얼굴 > 서평







지난 250여 년간 서구 사회를 구축하고 지탱해 온 여러 사상이 휘청대고 있다. 공공연한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쇠퇴하고 있고 자유주의는 고전 중이며 자본주의는 본연의 빛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널리 지지받는 사상이 있으니 바로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능력주의 두 얼굴 >



'능력주의' 부(富)나 권력과 같은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사람의 능력 및 성취도에 따라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을 뜻하는 정치 철학이며, 경제적 자유주의와 연관이 깊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큰 인기를 누려왔다. 인기를 누려온 이유에는 능력주의의 네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능력주의 사회는 타고난 재능만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자부심의 척도다.

둘째, 모든 이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해 기회균등을 보장한다.

셋째, 인종, 성별, 능력과 무관한 특성에 기인한 차별을 금한다.

넷째, 채용은 청탁이나 인맥이 아닌 공개경쟁으로 이뤄진다.



'능력주의'는 능력을 평가하여 수치화하고 이 수치에 순위를 매겨, 순위에 따른 차등 보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주의는 경쟁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능력이 높은 사람은 많은 돈을 받고 평범한 사람은 돈을 적게 받는다. 또한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사회에서 실패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착취하여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능력주의로 인한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빈곤, 소득의 불평등, 경쟁의 심화, 실업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능력주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엘리트 교육은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과연 능력주의가 우리에게 균등과 평등을 제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평등과 빈곤을 야기하는 것일까?



책 < 능력주의 두 얼굴 >은 독자들의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 줄 것이다.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능력주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야기해 줄 것이다.








능력주의의 탄생


과거 서양의 중세에는 세습주의가 만연했다. 세습주의란 일반적으로 한 집안에서 후손에게 재산이나 직업등을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습주의는 평등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의도와 다르게 직업의 강제성으로 다른 적성은 포기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직업과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주의는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능력주의의 부상으로 인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과거 중국은 시험제도를 통해서 나라의 인재를 등용하였고, 유대인의 능력주의를 통한 괄목할 만한 업적도 능력주의를 부상시킨 배경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능력주의라는 의제가 아드레날린처럼 유럽 정치의 심장부에 주입되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제6조에는 떠오르는 능력주의 사상이 가장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다.

법은 보편적 의지의 표현이다. 모든 시민은 법의 형성에 개인적으로 또는 대리인을 통해 동의할 권리가 있다. 법은 보호조항이든 처벌조항이든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한 만큼 덕성과 재능 이외 기준은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에 따라 모든 공직, 지위, 일자리에 지원할 권리를 갖는다.

이 조항에는 엘리트 고위 관료가 인구 전체를 샅샅이 뒤져 미래의 고위 관료를 찾아야 한다는 중국의 발상이나 타고난 수호자는 어느 계층에서든 나올 수 있다는 플라톤 사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모든 시민은 국가 앞에 평등하며 향후 노력하면 얼마든지 정책입안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능력주의 두 얼굴 >



능력 공화국


과거 미국은 독립혁명을 통해서 우선권, 서열, 지위라는 낡은 원칙을 거부하고 개인의 능력에 기반한 사회를 수용하게 되었다. 귀족사회를 타파한 미국은 이민자가 새운 나라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개척정신과 창조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능력주의로 인해서 상당한 문명 발달을 이루게 되었다. 더불어 헌법을 통해서 사람들이 재능을 최대한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하였고, 이익 집단이 소수자를 약탈할 수 없도록 하였다.





미국이야말로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를 기생충처럼 빨아먹는 귀족 가문, 궁정, 국왕, 주교, 교회 지배층이 없음은 물론 소수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보이지 않는 세력, 수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규모 공장, 명품의 위대한 품격 따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위적 계급을 타고난 계급으로 대체하는 과감한 실험 중이던 미국은 당시 세계의 한줄기 빛이었다. 독립선언문의 핵심인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문구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실력과 장점을 갖고 태어나 하나같이 비슷하고 대체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계급과 계층이라는 인위적 차이가 타고난 실력과 에너지로 인한 차이를 앞서면 안 된다는 뜻이다. <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능력주의 두 얼굴 >



능력주의의 위기


능력주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은 기회의 평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탓에 치열한 경쟁이 유발되었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와 실패한 자의 간극은 심해져 갔다.



또한 능력주의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부여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불평등을 가중시켰다. 능력을 통해 사회의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자식에게 엘리트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문화, 경제, 사회적 자원을 상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교육 과정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계층의 이동이라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능력주의는 현대 사회의 연대의식의 부재, 부의 양극화 문제, 소득 불평등, 윤리적 문제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다.



이전 부유층이 능력주의를 수용했다면 이들은 능력과 돈을 모두 갖춘 새로운 부유층으로 자녀를 위해 교육적 특권을 매입하는 묘수를 썼다. 엘리트의 세계화로 재화와 정보, 무엇보다 돈의 흐름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였다. 또한 계층 간 이동성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면서 빈곤층 자녀가 상류층에 편입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능력주의 두 얼굴 >






자 그렇다면, 능력주의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사실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분명 과거에는 세습주의로 인해 계층의 이동 사다리가 없었고, 기회의 불평등 때문에 능력주의가 부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주의가 엘리트를 양산해 냈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게 하였다. 고착화된 능력주의는 과열 경쟁을 유발했고, 부의 양극화를 만들어 냈다.



결국 능력주의가 공정한가 차선인가?라는 문제를 넘어서 이러한 능력주의 체제를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정책 입안자' 들의 몫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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