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월에 예삐가 그랬다.
"이 학교 애들을 네 글자로 설명해줄까?
미.래.없.음."
그 학교는 내 모교였다. 전문상담교사로 임용되어 첫 발령받은 학교이기 이전에 내 학교였다. 2017년에 매일매일 이 학교를 지나 도서관에 가서 임용 공부를 하고, 이 학교를 지나 집으로 가면서 꿈꾸던 학교였다. '아 내 모교로 발령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문상담교사는 중등 과목이었기에 초등학교에 발령될 리 만무했지만 그냥 꿈같은 거였다.
매일같이 어두운 새벽녘에 도서관으로 출발해서 어두운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 늘 기도하듯 중얼거리던 목표와 꿈이 한 개씩 있었다. 수석으로 붙어야지, 이건 목표. 내 모교에 가고 싶다, 이건 꿈.
염원하던 수석으로 경기도 전문상담교사 중등 임용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중등 과목이지만 초등학교에도 발령이 난다는 것. 그리고 올해부터는 초등과 중등으로 아예 급간이 나뉘게 된다는 것. 초등과 중등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안내장에 고심하다 초등을 적었다. 중, 고등학교는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이 90%를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초등학교는 이제 막 배치를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되자.'는 생각이었다. 아주 솔직해보자면 중등 전문상담교사로 일하며 마주하게 될 '자살', '자해', '임신'이 두려웠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했달까.
그렇게 초등과 선호지역을 선택하고 나자 내가 갈 수 있는 두 개의 초등학교 후보를 알게 되었는데, 두 학교 중 내 모교가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진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다른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들어오시는 상담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본인은 내 모교가 아닌 다른 한 학교를 희망하신다고 했다.
그럼요! 네! 너무 좋아요! 경기도 임용 수석에 모교 발령이라니. 너무 특별하잖아. 그렇게 꿈같은 첫 발령이 시작됐다. R=VD라고 하더니. 이게 되네. 하면서.
그렇게 심장 터질 듯 부푼 맘을 안고 들어온 학굔데. 내 후배들을 '미래없음'이라는 단 네 글자로 설명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예삐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이 학교에 2년 전 발령받은 초등 교사였지만, 나는 도무지 예삐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예삐야 어떻게 그렇게 말을 심하게 해.
우리 학교가 그럴 리 없어. 우리 애들이 그럴 리 없어.
근데 예삐 말이 맞았다. 이 학교 애들, 이 동네 애들, 이 지역 애들은 미래가 없어. 그 학교에 예삐처럼 2년을 근무하고 나니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예삐는 이미 다른 학교로 떠난 후였는데, 예삐한테 따로 연락해서 말하고 싶기까지 했다. '미래없음'. 야 네 말이 딱 맞아. 얘네한텐 미래라는 말도 사치다, 야.
날 것 그대로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애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학부모들에게 질려버렸다. 열악한 학군이라는 게 이런 걸까. 분명히 '라떼는' 이 정돈 아니었는데.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전문상담교사 이거 못해먹겠다. 내 꿈을 찾아 떠나자. 영국 유학을 가기 위해 방학마다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아이엘츠 자격증도 다 따놨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며 발이 묶였다. 그래서 도망치듯 학교를 옮겼다. 부유한 학군은 좀 다르겠지, 하면서.
나쁜 학군과 좋은 학군을 2년씩 거쳐보니 진짜 그만둘 맘이 생기더라. '와 이거 못할 짓이다.'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교육청으로 옮겼다. 교육청까지만 가보자, 교육청 가보고 거기도 진짜 아니면 그때 정말 그만두자 다짐했다.
그렇게 교육청 위(Wee) 센터에서 2년 더 일하고, 여전히 그만두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 전문상담교사 진짜 그만두려고 했는데, 아 진짜 그만두려고 했는데, 아 이제 정년까지 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내담자 친구들 보호를 위해 상담 내용은 가급적 쓰지 않기로 했다. 상담 얘기 안 해도, 그래도 할 말 많다. 글에 나올 이름은 모두 가명이고, 기억 속 인물 그대로를 묘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튼 8년간 초등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로서 보고 듣고 느꼈던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 그걸 통해 한 직업인의 직업 정체성 혼란과 성장 혹은 타협 정도를 담아 보려고 한다.
신규든 저경력이든 고경력이든 전문상담교사로서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머릿속에 차있다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8년 이야기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만두든, 계속하기로 결심하든, 당신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었음에 위안받았으면 좋겠다.
전문상담교사가 아닌 다른 비교과 교사든, 교과 교사든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인이든.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도 잠시간 환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길 바란다.
세상엔 이런 직업도 있답니다. 우리 모두 힘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