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아웃은 좀 너무하신데요

Part 1. ep 1. 첫 학교 첫날

by 오엉

2월 마지막주쯤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그 학교로 발령받은 신규 교사들과 타 지역에서 들어온 교사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날.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은 어떤 분들이실까 궁금하기도 했고, 내 모교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도 궁금했다.


임용 준비를 하던 매일매일 지나다니던 모교의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밟고 학교를 바라보니 드는 생각. '와 너무 작다.'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생일 때 이 학교는 진짜 엄청 컸었는데. 매일 학교 끝나면 이 스탠드에 앉아서 친구들과 하릴없이 시간을 때웠었는데. 그때는 스탠드가 진짜 컸었는데. 아 저쪽 등나무 벤치에서 술래잡기 했었는데 그게 없어졌네. 아 저 놀이터도 진짜 조그맣다. 저기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떨어져서 기억을 잃었었는데.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한참 혼자 킬킬거리다가, 본관 정문 앞에 붙어있는 '환영합니다' 표시를 보고 한순간에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 취업한 20대 성인 여성으로 돌아왔다. 크게 쓰인 '환영합니다' 밑으로 이름들이 쓰여있었다. '사진을 찍어놔야지' 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켜며 눈으로 빠르게 훑었는데 이상했다. 내 이름이 없었다.








환영한다는 종이 팻말에는 네 명의 낯선 이름만 있었다. 순간 뒷골이 서늘해지면서 '내 발령지가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통화했던, 이 지역으로 전입해 다른 학교를 희망하신다던 상담 선생님이 마음을 바꾸셨나? 내가 그 학교로 가게 된 건가? 했지만 그랬다면 그 선생님의 이름이 종이에 적혀있었을 터. 종이에는 그 선생님의 이름 또한 없었다. 뭐지? 나 임용 합격 취소된 거 아냐? 별 최악의 상상까지 다 들었다.


마음은 혼란했지만 겉으론 당당하고 차분한 20대 여성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실수가 있었겠지. 거기에 이름 하나 없었다고 왜 내 이름은 없냐고 따져 물으며 첫인상을 망칠 순 없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아니야, 침착해. 저 종이팻말 따위는 난 보지도 못한 거야. 그냥 그렇게 들어가서 내가 누군지 밝히자. 그럼 환영해 주시겠지. 종이에 이름 안 적힌 것 따위는 그냥 해프닝일 뿐이야.


그렇게 교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딱 봐도 '나 긴장했음'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있는 세네 명의 젊은이가 교무실 가운데 탁자에 모여있었다. '쟤네가 내 발령 동기들이구나.' 인상들이 다들 좋아서 맘이 놓이면서도, 긴장이 역력한 얼굴들이 귀여웠다. 늬들은 이 학교가 처음이지? 나는 이 학교를 6년을 다녔었어 이것들아. 여기가 내 모교라 나는 긴장될 것도 없다 이거야.


교무실 실무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오셨어요?" 물으셨고, "아, 신규 발령받은 이오엉입니다." 말했다. 그 순간 안쪽 파티션에서 중단발의 갈색 파마머리가 굉장히 부스스한 중년 여성분이 양치를 하며 나타났다.


"어? 우리 신규 지금 다 왔는데?"








나도 신규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니라고 하셨다. 맞다고 다시 말씀드리자 우리는 신규 4명 받았다고, 여기 지금 4명 다 와있다고 하셨다. 아아. 오케이. 그렇게 구분을 지으실 거라면. 살짝 긁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직군이 다른 건 맞으니까. '신규 전문상담교사' 발령받아 왔노라고 말씀드렸다.


"전문상담교사? 그게 뭐지? 특수교사 같은 거예요?"


"아 .."


내가 머뭇거리자 또 한 번 물으셨다.


"선생님도 교육청 소속...?"


그 순간 머릿속에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내가 심리학과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 교직이수하면서 노력한 게, 1년 열심히 인강 듣고 1년 열심히 노량진 다녀서 임용치고 수석 했다고 자랑스러워했던 게. 내 첫 발령지 학교 교감이라는 사람이 '그게 무슨 직업인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라고? 그래서 환영합니다 종이 팻말엔 내 이름도 없고 자기들이 받은 신규 교사는 초등 신규 교사 4명이 끝이라고 알고 있는 거라고? 그럼 나는 뭔데? 나는 뭐 교육청에서 보낼 곳 없어서 여기로 억지로 보낸 거야? 초등 전문상담교사 T.O. 는 왜 있는 건데 그러면?


'중등 갈걸.' 하는 생각이 바로 스쳤다. 초등은 전문상담교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안 되어있다고 하더니. 이 정도로 심하구나. 심각하구나. 자리가 잘 잡혀 있는 중등으로 갈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초등을 선택해서 이런 개무시를 받나. 서러웠다.


특수교사와 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비교과 교사는 맞고 아이들 심리 상담 합니다.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아 그래요? 아 네 발령받았다니까 뭐. 일단 들어와요, 앉아요. 정도의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본인과 교장선생님은 3월이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날 예정이고 3월 개학 날엔 새로운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오실 예정이니 그분들과 잘해보라고도 하셨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내 교감이라면 '나'라는 존재, '전문상담교사'라는 존재의 역할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어필해야 할지 난감하니까.








내 이름이 없는 걸 발견하고, 자기들이 받은 신규 교사 숫자에 날 넣어주지 않고, 전문상담교사가 특수교사 같은 거냐고 교육청 소속이냐고 묻는 것까지 그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시간. 이날의 기억은 '삼진아웃'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이미 삼진아웃 상태로 직업 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의 앞날이 어떨는지는 뻔하지 않은가. 이날 이후로 하염없이 '중등'을 꿈꾸고, '탈 전문상담교사'를 꿈꿨다. 인간의 생애초기기억과 삶에 빗대보자면 한 전문상담교사(인간)의 탄생 이후 생애 최초의 기억이 저 삼진아웃인 거니까. 스스로 확고한 정체성 및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 직업(자신)을 사랑하는 전문상담교사(인간)로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그날의 많은 장면이 이해가 된다. 학교의 기존 구성원에게 신규 교사나 전입 교사를 받는 일은 '방학 중 귀찮은 업무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이 3월에 다른 학교로 교장 승진되는 상황이었다면 더더욱. 교장선생님이 전문상담교사 배치 신청하라고 하니 신청은 했지만 그게 뭔지 제대로 몰랐을 수 있고, 배치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나 발령 공문에서 전문상담교사를 찾아볼 생각조차 못했을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삼진아웃은 좀 너무했잖아요 진짜.


그래도 그때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3월이 되면 새로운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 오실테니까. 새 학기가 되면 달라지겠지. 아이들을 만나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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