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2. 개학
위클래스(상담실)는 교무실 옆에 있었다. 내가 앞으로 매일매일 출근해서 있어야 할 곳. 이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아픈 맘을 어루만져주고, 힘들고 아파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할 곳.
그곳의 첫인상은 '복덕방' 그 자체였다. 교실 반 칸 정도 크기의 공간에 회의용 넓은 나무 테이블과 네모네모한 나무 의자들, 담소용(?) 낮은 앉은뱅이 테이블과 거기에 걸맞은 낮은 까만 가죽 소파까지. 금방이라도 70-80대 할아버지 두세 분이 모여 둘러앉아 믹스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며 사는 얘기 나누실 법한 공간이었다. 앉은뱅이 테이블 유리 밑에 끼워진 초록색 부직포의 생경함이 여전하다.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을 상담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제대로 된 위클래스도 구축 안 해두고 상담교사를 받은 건지. (그때는 몰랐다. 이 학교가 교육청에 위클래스 구축을 할 거라고 뻥치고 상담교사 배치해 달라고 신청한 것을. 학교폭력이나 위기사안이나 학부모 민원이 많으니 초등 전문상담교사 t.o. 가 1명이던 그 해에 지역 내 1순위로 유일하게 배치받게 된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왔으니 초등학생들을 상담할 법한 공간으로 꾸며야 했다.
10명은 족히 둘러앉을 수 있는 나무 테이블의 가장자리에는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도록 컬러링 테이프를 두르고 색연필과 사인펜들을 올려두었다. 앉은뱅이 테이블 유리 밑 초록색 부직포를 빼내고 빨주노초파남보 색지를 세모세모하게 잘라 넣었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학군 특성을 고려해 '환영합니다'를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으로 써서 한 글자씩 코팅하고 잘라 색깔끈에 하나씩 이어 붙였다. 손가락 끝이 종이에 베이고 풀이 묻어도 기분이 좋았다. 이 학교 아이들이 처음 위클래스를 발견했을 때 '여긴 나를 환영하는 곳이구나' 느끼길 바랐다. 그걸 복도 벽에 걸었다.
그때 교무실에서 새로 오신 교감선생님이 나오셨다. "어우 이오엉 선생님.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그 순간 그분의 말씀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칭찬으로 들렸다. 신규교사가 얼마나 열심으로 보였으면 열심히 하지 말라고까지 말씀하시겠어.
근데 그 말을 오후에 부장님께 또 들었다. 업무포탈이니 공문이니 내부결재니 하는 것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운영계획서'라는 공문을 업무포탈에 내부결재 올려야 했기 때문에 부장님이 수업 끝나신 후 특훈을 해주시기로 한 것이다. 그분은 센스 혹은 예민함으로 무장된 중년 남성으로, 본인의 일에는 엄격하고 야무지고 철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인지 신규교사에게는 인지) 관대했다. (그분이 내게 공문 시작 1번 '관련'에는 '00초등학교'라고 쓰고 아무 숫자와 아무 날짜나 쓰면 된다고 알려줬고, 나는 진짜로 2년여를 아무 숫자나 쓰다가 다음 학교에 가서야 '1. 관련: 00초등학교-????(20??. ??. ??.)호.'에 진짜로 관련된 공문의 공문번호와 날짜를 써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영계획서 관련해서 세 번 네 번 찾아가 검토를 받는 내게 부장님이 그랬다. "자기야.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써."
예삐에게 가서 물어봤다. 예삐야. 교감선생님도 부장님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시네?
야. 당연하지. 열심히 하지 마. 열심히 해봤자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학교라는 데가 그래.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열심히 해봤자 애들이 못 받아먹어. 이 학교 애들을 네 글자로 설명해줄까? '미래없음'이야. 미래 없는 애들한테 열심히 하지 마. 너만 상처받아.
왜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셔?를 채 묻기도 전에 예삐가 다다다 말했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거 사실은 칭찬 아닐까나~ 하며 친구에게 살짝 자랑하고 싶기도 했던 교활한 내 마음은 모교 후배들을 후두려 패는 네 글자의 말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나만 상처받는다는 그 말에 더 상처받은 건 "아 그렇구나."하며 숨겼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게 내 성격이라. 배운 게 그것밖에 없고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는 사람이라. 그냥 뭐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게 제일 미덕인 줄 아는 사람이라. 세 명의 동일한 경고를 받고도 내내 열심히 했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열심히 하는 게 왜 안 좋은 거냐며. 난 그냥 열심히 할란다, 하며 살았다.
근데 두 번째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옮길 때쯤 되니 예삐가 또 생각나더라.
'예삐야. 열심히 하지 말 걸 그랬다.'
열심히 해봤자 내 쓸모는 그냥 그들의 총알막이일 뿐이고, 열심히 해봤자 내 진심만 상처받고. 열심히 해봤자 소진만 겪을 뿐인데.
그때는 몰랐다. 세 명이 똑같은 말을 할 때는 이유가 있다는 걸. 그냥 젊고 어리석었다.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