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3. 강이똥별
수요일마다 만나는 아이가 있었다. 4학년 여학생, 강이샛별. 엄마성과 아빠성을 하나씩 따서 성이 ‘강이’씨인 아이. 선택적 함묵증.
학교에서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집에서는 수다쟁이라는데,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아이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상담이라는 게 원래 대화로 이루어지는 건데,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특성상 상담에는 늘 특별한 방식이 필요했다. 처음엔 필담을 나누기도 하고 컴퓨터로 채팅을 해보기도 했지만 쓰는 말이라곤 ‘yes’, ‘no’, ‘똥‘이 전부.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똥별이' 라고 불렀다. 우리의 상담은 점차 매체상담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찰흙을 만지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식이었다. 우리 둘은 말 대신 손으로, 표정으로, 고개 끄덕임으로 대화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다.
그날의 상담 매체는 데코샌드였다. 색모래를 부어 그림을 완성하는, 문구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그거. 도안은 두 개. 기린과 장수풍뎅이. 선택적 함묵증 아이들이 대체로 그렇듯, 똥별이는 뭔가를 먼저 선택하는 법이 없었다. 말을 안 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선택이든 먼저 나서는 걸 꺼린다. 그래서 늘 내가 먼저 골라야 했다.
'얘가 기린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내가 장수풍뎅이를 집었다. 아이가 기린을 가져갔다. 데코샌드는 진한 색부터 시작해야 한다. 검은색, 갈색, 그다음 밝은 색 순서로. 기린 도안에서 가장 먼저 떼어내야 할 스티커는 까만색 눈알 부분이었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떼어냈다. 작고 동그란 눈알 구멍 두 개가 드러났다. 나는 검은색 색모래 통을 건넸고, 아이가 통을 기울였다.
그런데.
후루루루루.
색모래가 한쪽 눈에만 쏟아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쪽 눈만 시커멓게, 동그랗게, 엄청나게 커져버린 기린이 탄생했다. 마치 밤새 누군가한테 맞은 것 같은, 한쪽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버린 기린.
그 순간이 데코샌드를 시작하고 우리 둘 사이의 첫 액션이기 때문에 나도 아이도 기대에 차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과물이 눈탱이 밤탱이 기린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하."
그랬더니 아이 얼굴이 변했다. 무표정하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나는 선택적 함묵증이니까. 학교에서 소리를 내면 안 되니까.'
아이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웃고 싶은데 웃으면 안 된다고,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이 아이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너무 귀엽고, 또 가여웠다.
"너도 웃기지?"
내가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로.
"웃어도 돼. 이거 진짜 웃기잖아."
아이가 결국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소리 없는 웃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웃고 있었다.
우리는 눈탱이 밤탱이 기린을 그대로 완성했다. 한쪽 눈만 비정상적으로 큰 기린. 색모래를 더 부어서 고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게 더 웃기니까. 이게 더 우리 거니까.
완성된 데코샌드 액자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아이는 무표정이었다. 늘 그렇듯이. 그래서 내가 말했다.
"눈알~"
아이의 얼굴이 와르르 무너졌다. 웃음이 터져버린 얼굴. 찰칵. 그 순간을 찍었다.
담임선생님께 데코샌드 액자를 선물로 드리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실 앞에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인증샷을 찍는데, 아이가 또 무표정이었다. 내가 담임선생님 뒤에서 입만 뻥긋거렸다. '눈알~'. 소리 없이. 아이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담임선생님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하셨지만, 나와 아이는 알고 있었다. 이건 우리만의 비밀 암호 같은 거라고.
그날 상담일지를 쓰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가 집에서는 얼마나 시끄럽게 웃을까. 얼마나 큰 소리로 깔깔거릴까. 학교에서도 그렇게 웃고 싶겠지. 친구들이랑 떠들고 싶겠지. 선생님한테 "저요! 저요!" 하고 손 들며 아는 척하고 싶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올해 안에. 아니면 내년 안에. 아니면 졸업하기 전에. 꼭.
그날 이후로 '눈알‘은 우리만의 언어가 되었다. 아이가 무표정으로 굳어 있을 때, 내가 "눈알~" 하면 아이는 웃었다. 여전히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웃었다. 그 웃음이 언젠가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오길. 매주 수요일마다 그렇게 빌었다.
전문상담교사라는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종종 이 아이가 생각난다. 말 한마디 안 하는 아이와 색모래를 쏟으며 같이 웃었던 그 수요일 이야기. 밤탱이 기린과 함께 찍은 인증샷 이야기.
누군가는 말한다. 그게 상담이냐고. 그냥 노는 거 아니냐고.
그래, 그냥 논 거 맞다. 근데 그 '그냥 노는 것'이 이 아이한테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소리 없이 웃어본 경험이었고, 누군가와 비밀 암호를 공유한 경험이었고, '학교도 괜찮은 곳일 수 있다'고 느껴본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이 아이의 목소리가 학교에서도 터져 나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