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4. 강이똥별네 집
똥별이네는 6남매였다. 초등학교에 셋, 유치원이랑 어린이집에 둘, 그리고 갓난쟁이 하나.
똥별이는 그중 둘째.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선택적 함묵증 아이.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데 갓난쟁이가 엄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어머님, 애기 달래시고 이따 다시 전화 주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좀 더 얘기하는데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목청이 찢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
"어머님, 진짜 애기 좀 보시고 이따 다시 전화 주세요."
그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
"아니, 쟤는 오늘 하루 종일 울어야 돼요. 쟤 오늘 기 꺾는 날이에요.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쟨 오늘 웬종일 울어도 안 달래줄 거예요. 애들은 이렇게 한 번씩 기를 죽여놔야 돼요. 그래야 에미 말을 들어요. 얘 형, 누나들도 다 그렇게 컸어요."
수화기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엄마, 장난 아니다.'
선택적 함묵증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그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적인 원인을 '공격성'으로 설명한다. 주로 엄마에 대한. 사회적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주변을 통제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뭐 그런. 초짜 전문상담교사의 위험한 한 견해일 뿐이지만, 그날 이후로 자꾸 생각이 들었다. 똥별이도 저 강한 엄마와의 어떤 역동 속에서 입을 닫게 된 걸까.
한 6개월쯤 상담을 했을 때 똥별이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통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얘가 말을 하는 공간은 집이잖아. 내가 그 집에 들어가면 말하는 똥별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랑 집에서 얘기를 나누고 나면, 학교에서도 "저 사람이랑은 집에서 얘기했었으니까"하고 말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랑 상담실에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 공간을 결국 교실까지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였는지 '금쪽같은 내새끼'였는지 아무튼 그런 프로그램에서 선택적 함묵증 아이 치료에 비슷한 방법을 썼던 것이 기억났다. 이제 내가 오은영이 될 차례다.
교감선생님께 내 가설을 말씀드렸다. 허락받고, 출장 달고, 어머님께 허락을 구했는데,
어머님이 거절하셨다. 집이 너무 더럽다는 이유.
다음 달에 또 요청드렸다. 또 거절하셨다. 그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이유는 매번 달랐다. 집이 좁아서, 바빠서, 애들이 많아서. 나는 계속 부탁드렸다. 똥별이를 위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님이 허락하셨다. 임대 아파트로의 이사를 앞두고 임시 주택에 잠깐 머무는 동안이었다. "그때 오세요." 몇 개월 만에 떨어진 허락에 기쁘고 들뜬 마음이었다. 퇴근 후에 과자 세트랑 음료수 세트를 사들고 그 집으로 갔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똥별이 얼굴이 보였다.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환희.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빠나 여동생 친구들이 집에 온 적은 많았겠지. 하지만 자기 친구가 온 건 처음이었을 거다. 물론 내가 똥별이의 ‘친구’는 아니지만, 자기 ‘손님’이 온 것도 처음이었겠지.
너무 신나고 벅차 보였다. 눈이 반짝거렸다. 근데도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어머님이 말했다. "똥별아, 선생님 오셨는데 인사해." 오빠랑 여동생들도 거들었다. "야, 말 좀 해봐. 목소리 좀 들려줘." 아무리 애원해도 똥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내가 말하고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같이 풍선 놀이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잡기 놀이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소리를 꺅꺅 질러대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을 정도로 엄청 액티브하게 놀았다. 똥별이는 온몸으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소리 없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꿋꿋하게 버텼다. 대단했다. 내가 진 거지 뭐.
어머님은 내가 집에 도착한 뒤로 "잠시 시장 다녀올게요." 하며 갓난쟁이만 데리고 나가셨었다. 기진맥진하게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한참 후에 어머님이 양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들어오셨다.
"말했어요?"
다른 형제들이 나서서 대답했다. "아, 안 했어! 한마디도 안 했어!"
"괜찮아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은 똥별이를 면전에 두고 말했다. "으유, 저 질긴 것."
어머님은 사 오신 김밥, 치킨, 떡볶이, 튀김을 아이들 앞에 쫙 깔고 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선생님 같이 드세요' 같은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어머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땐 말할지도 모르죠."
그 말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소름이 돋았다.
주택 대문을 나오며 생각했다. '아, 이렇게 학생 집에 함부로 오는 게 아니구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또 생각했다. '아, 이 직업 계속할 수 있을까.'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굉장히 찝찝한 느낌. 근데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는. 그냥 자기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덤빈 초짜 전문상담교사가 처음 느낀, '한계' 같은 것이 주는 찝찝함이었을까.
한참을 그냥 "아우 나도 해봤는데, 가정방문은 할 게 못 돼." 정도로 살다가, 이 글을 쓰는 이제야 깨달았다. 똥별이 엄마가 왜 그 타이밍에 허락했는지. 임시 주택. 곧 이사. 다시는 안 올 일주일만 사는 집. 엉망인 집을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고, 아이가 맘처럼 되지 않아도 핑계삼을 수 있는. 게다가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말이 가볍게 가능한 상황. 어차피 '다음'은 없으니까.
몇 달을 졸랐는데 결국 그 엄마가 원하는 타이밍에, 그 엄마가 원하는 조건으로, 딱 한 번 허락받은 거였고, 나는 실패했다. 나는 내가 끈질기게 설득해서 얻어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그냥 그 엄마 손바닥 안이었다.
'애들은 이렇게 한 번씩 기를 죽여놔야 돼요.'
기 꺾인 건 갓난쟁이만이 아니었다.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