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도 입양이 되나요

Part 1. ep 5. 내 보물, 지우

by 오엉

우리 학교 근처에는 새빛원이라는 아동복지시설이 있었다. 아예 고아원은 아니고, 부모들이 잠깐 사정이 안 될 때 아이들을 맡기는 곳. 근데 물론 그 '잠깐'이 10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있긴 하다. 갓난쟁이들부터 고등학생까지 다 맡는 곳으로 알고 있다.


우리 학교엔 새빛원 아이들이 다녔다. 4학년에 1명, 5학년에 3명, 6학년에 2명. 여학생들은 워낙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다녀서 남학생들 수만 기억난다. 그중 4학년 남자애 한 명이랑 5학년 남자애 한 명이 상담실에 자주 놀러 왔는데, 4학년이 지우, 5학년이 도윤이었다.


걔네는 등교를 같이 하니까 등굣길에 늘 같이 왔다. 꼭 그렇게 내 앞에서 서로에게 과시하듯 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선생님, 어제 밤새 선생님한테 편지 썼어요."


"선생님, 저는 과자 가져왔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하루 만에 또 보고 싶었어요."


이 녀석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지우는 도윤이보다 더 열정적이어서 하굣길에도 늘 상담실에 들렀다. 새빛원으로 돌아가기 전 의식 같은 거였다. 도윤이가 있을 땐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다 늘어놓고, 나에게서 하룻밤 더 버틸 힘을 받고 가는 것.


새빛원에 4학년 남자애가 자기 하나뿐이라 자기는 왕따라고. 5학년 형들도 6학년 형들도 다 자기한테 심부름만 시키고 욕하고 때린다고. 중학교 형들도 다 자기를 미워한다고. 여기서 상담하고 싶은데 새빛원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상담하는 거 절대 안 된다고 한다고.


시설에서도 매주 상담을 진행하시기 때문에 외부 상담과 중복으로 받는 게 좋지 않아 허용하지 않으시는 거 알고 있었다. 지우 또한 자기 밑 학년 남자애들한테 거칠게 대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오구오구 해줬다.


아유 서러웠겠다 우리 지우. 선생님이 형들 혼내줄까? 누가 우리 지우를 괴롭혀, 정말 선생님 속상하게! 우리 보물 지우를. 오구오구.


지우는 퐁퐁 눈물을 흘리다가도 내가 안아주면 오늘 밤도 잘 버틸 수 있겠다며 웃으며 하교했다.








그 무렵 나는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었다. 연습 삼아 이것저것 써보다가, 문득 지우 생각이 났다. '내 보물, 지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썼다. 그렇게 지우 이름으로 연습하길 수백 번. 잘 써졌다 싶으면 지우한테 줬다. 지우는 그걸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꾸깃꾸깃 주머니에 넣어 갔다. 구겨지잖아, 했더니 괜찮다고, 계속 만지작거릴 거라고 했다.


그 뒤로도 종종 지우한테 글씨를 써줬다. '오늘도 잘 버텼다, 지우야.' '선생님은 지우 편이야.' '우리 보물.' 손편지도 썼다. 네가 선생님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니, 이런 말들을 또박또박 눌러썼다. 지우는 받을 때마다 수줍은 얼굴로 말갛게 웃었다.


교감선생님은 늘 정문에서 등교 맞이를 하셨는데, 개학 첫날부터 지우와 도윤이가 눈에 띄었다고 하셨다. 아주 눈에 살기가 있고, 날것 그대로의 눈이라 인상 깊으셨다고. 근데 걔네가 상담실 들락날락거리더니 눈에서 살기가 다 빠졌다고. 야생동물들이 집동물 됐다고, 이오엉 선생님 대단하다고 늘 나를 칭찬하셨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고민은 있었다.


지우가 내내 맘에 걸려서, 걸리다 못해 콕 박혀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지우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 조그맣고 삐쩍 마른 애가, 또 새빛원에 가서 형들에게 괴롭힘 당하면 어쩌나. 서러워서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 잠들면 어쩌나. 걔 생각만 하면 맘이 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우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상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다리가 왜 그래?!"


난 이제 지우에 대한 일이라면 놀람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우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어제 내가 준 과자를 형들이 뺏어갔다고. 그래서 형들한테 덤볐다가 맞았고, 맞는 중에 다리를 잘못 맞아 심하게 다쳤다고.


진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실 따위 내겐 중요치 않았다. '이것들이 또!' 하면서 분노하고, 새빛원 선생님께 전화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달래 교실로 보냈다. 거의 학교폭력을 처음 마주한 한 엄마의 마음이었달까.







그날 처음 '미혼 여성도 입양할 수 있나요?' 이런 걸 검색해 봤던 것 같다.


그 조그만 아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아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가족도 뭣도 아닌 형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 남은 인생을 그냥 그 아이에게 헌신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애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만 30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에 미혼 여성으로서의 입양 절차는 훨씬 더 복잡했다. 그때 나는 '30살만 되자'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첫 여름방학이 왔다. 지우는 수십 일 동안 나를 못 본다는 생각에 애가 탔다. 매일매일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근데. 그러기가 싫더라.


진짜 쪽팔리게도, 어떤 지난 한 날엔 그 애의 엄마가 되어 평생 살 작정까지 했으면서. 그 여름방학, 그 3주간의 휴가, 그게 뭐라고. 아, 늦잠도 실컷 자야 하고 부산 여행도 가야 하고 라섹 수술도 해야 하는데 방학에 어떻게 학교를 매일.. 하는 생각에 걔한테 '그럴 수 없다'고 말하게 되더라.


그 대신 내가 방학 중 근무하는 날짜를 알려주며, 그때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잔뜩 실망하던 얼굴. 실망 중에도 내 설득에 속아주려던 그 얼굴. 방학 중 며칠의 근무 날짜에 다시 나를 믿어봐 주려던 그 얼굴이, 지금 또 생각이 난다.



지우는 오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지우는 변함없이 등굣길마다 도윤이와 상담실에 왔지만, 우리 사이의 온도는 살짝 미지근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참 오만했다. 그 애의 가족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도 가족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면서. 평생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내 보물, 지우.' 그렇게 써줬으면서.


구원이라니. '구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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