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정신과는 처음이라

Part 1. ep 6. 또래상담자, 아현이

by 오엉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학교에서는 '또래상담부'라는 동아리를 운영해야 한다. 학생들한테 상담 교육을 시켜서, 각자 또래들을 상담하고, 학교폭력도 위기사안도 예방하자는 그런 의미의 동아리. 나는 6학년을 대상으로 또래상담자를 모집했는데, 그중 한 명이 아현이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키도 몸집도 크고 까무잡잡했던 여자아이. 성격은 활발하고 호탕해서 다른 또래상담자들의 리더 격이었다. 동아리 시간에 내가 뭘 설명하면 제일 먼저 알아듣고, 다른 애들한테 "야, 이건 이런 뜻이야" 하고 통역해 주는 애. 목소리도 크고 웃음소리도 컸다.


그렇게 몇 달을 또래상담 동아리를 이어갔을까. 어느 날 아현이가 동아리 끝나고 애들을 모두 먼저 내보내면서 말했다.


"선생님하고 둘이 할 얘기가 있어요."


의아했다. 무슨 얘길까 궁금했다. 아현이는 애들이 다 나간 걸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복도까지 내다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그 팔엔 칼자국이 수없이 많이 나 있었다.


처음이었다. 자해를 만난 건. 자해 자국을 실제로 본 건. 며칠 되었는지 이미 딱지가 앉은 칼자국부터, 정말 한두 시간 전에 그은 것 같은 새빨간 칼자국까지. 줄줄이 나란히.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이런 걸 안 보려고 초등에 온건데. 초등학생은 자해를 안 할 줄 알았는데. 왜. 왜.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여름 내내 긴팔을 입고 다니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왜 미처 빨리 알지 못했을까. 그 활발하고 호탕한 웃음 뒤에 이게 있었는데. 스스로 자책감이 밀려왔다.


"아현아."


입을 열었는데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현이를 설득했다. 자해는 상담 비밀보장의 예외사항이라고. 보호자와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너를 치료받게 할 의무가 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주 후회가 된다.


'자해'라는 것에 압도당해서, '큰일 났다', '이건 비밀보장 예외사항이야', '이건 보고해야 해'라는 생각들에 압도당해서, 무작정 그런 얘기부터 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좀 따뜻하게 물어볼걸. 먼저 안아줄걸.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더니 할머니랑 산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혼하셨고, 아버지랑 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아버지는 일하러 멀리 가셨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아현이가 정말 나에게 'SOS'를 치기 위함이었는지, 보호자에게 연락한다는 말에도 아무런 거부가 없었다.


"도와주세요. 저도 그만하고 싶어요."


그 말에 코끝이 찡했다.







아버님과 통화하고, 할머니와 통화해서 학교로 모실 날짜를 잡고, 관리자들께 보고하고, 교육청에 보고하고. 그런 일들을 거쳐 결국 치료비 지원 사업으로 아이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갈 수 있게 됐다. 근데 문제는 아버지도 못 데려간다, 할머니도 못 데려간다 하신 거였다. 아버지는 멀리서 일하시느라, 할머니는 연로하시고 그런 데는 잘 모르시니까.


그래서 결국 내가 데려갔다.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둘이 걸어갔다. 나도 긴장이 되는데 얘는 어떨까 싶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걸었다. 요즘 뭐 보니, 점심 맛있었니, 그런 것들. 아현이도 긴장한 게 보였다.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그 병원은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맨날 봤던 곳이었다. 밖에서 볼 땐 간판도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라, 저기는 누가 가긴 가나 싶었다. 근데 병원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 보니, 문밖에서만 봐도 사람이 미어터졌다. 평일 오후 두세 시였는데도. 초등학생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와 어머니부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정말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대기실을 스캔했다. 우리 학교 학생이나 아는 사람이 있는지. 다행히 없었다. 아현이와 눈빛을 교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현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정신과에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나도 정신과가 처음이라 전혀 몰랐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근데 그냥 경험이 있는 척해야 할 것 같았다. 정신과가 처음인 아현이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원래 많아. 다음엔 꼭 예약하고 오자."


"쌤 와봤어요?"


".. 나는 와봤지."


접수를 하는데 간호사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또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눴다. 긴 대기 시간이 어색하지 않게.


그날의 진료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로 몇 번을 더 갔다. 그러다 그 병원에서 더 이상 아동청소년 진료를 안 받는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좀 더 먼 병원으로 옮겼다. 아현이가 좀 더 상냥하고 상담을 잘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50분씩 상담해 주는 공감형 예약제 병원을 알아보느라 애를 좀 썼다. 전화하고, 검색하고, 동료 선생님들께 알아보고, 또 전화하고. 그때는 아현이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내가 몇 번만 병원에 같이 가주고 졸업 이후에는 아이 혼자 병원에 갔다.


아현이의 자해와, 우울과, 병원 동행. 그것들로 나도 꽤나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아현이는 병원을 다니는 중에도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와 핏방울이 맺힌 팔을 보여줬고, 나는 그 상처를 소독해 주고 약을 발라주고 밴드나 붕대를 감아주는 데 익숙해졌다. 그렇게 한 명은 자해를 하고, 한 명은 약을 바르고, 그 둘이 함께 병원에 다녔다. 해가 짧은 겨울이었고, 퇴근 후 아현이랑 저 멀리 있는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릴 때 이미 온통 어둠이었다.


그러면 엄마 아빠가 있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정류장 옆에 있는 불 꺼진 건물 주차장을 내내 돌았다. 울면서.


아현이가 자해를 그만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나도 그만 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피를 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그 애의 우울이 너무 전염성이 강해 괴롭다고. 그렇게 기도하면서 울었다. 아현이가 옮긴 우울과 어두움을 눈물에 담아 쏟아내고, 그러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집까지는 가져가기 싫어서.







'대리 외상'이라는 말이 있다. 내담자의 고통이 상담자에게 전이되는 것. 대학교 전공 책에서 읽을 때는 그냥 글자였는데, 그 겨울 나는 그게 뭔지 온몸으로 알게 됐다.


아현이는 졸업했다. 아현이가 내내 걱정돼서, 아현이가 배정된 중학교에 찾아가서 그곳 상담 선생님께 아현이 이야기를 전했다. 아이가 계속 병원에 다닐 수 있게 치료비 지원 좀 계속해주십사 부탁드렸다. 일종의 상담 리퍼(refer)랄까. 그 이후엔 중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병원은 꾸준히 다니고 있는지, 자해는 멈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졸업하면 끝이니까. 초등학교 상담교사가 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니까.


가끔 그 애 생각이 난다. 소매를 걷어 보여주던 그 팔. 도와달라고, 자기도 그만하고 싶다고 했던 그 목소리. 정신과에 와봤냐고 물었던 그 얼굴.


나도 처음이었어, 아현아.


그때 그 말을 못 해서, 지금 여기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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