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교사는 못할 것 같다면서요

Part 1. ep 8. 첫 다면평가위원회

by 오엉

학교에서는 매년 다면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S, A, B 등급.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지고, 등급은 점수로 매겨진다. 점수는 세부 기준에 따라 산정되고, 그 세부 기준은 매년 다면평가위원회에서 정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초등교사' 기준이라는 거였다.


연간 총 수업시수, 수업공개 횟수, 생활지도 곤란도(담임/비담임)나 학년 곤란도, 업무 곤란도나 보직교사(부장교사)인지 일반교사인지 등. 전부 담임을 맡고 수업을 하는 초등교사들한테 유리한 항목들이었다. 비교과 교사인 상담, 보건, 영양, 사서는 애초에 담임을 맡지도 않고, 정규 교과 수업도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항목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경쟁이 안 되는 구조였다.


지금은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비교과 교사끼리 따로 평가해서 초등교사들이 우리를 '적'으로 보지 않지만, 2018년, 내가 첫 발령받은 해에는 달랐다. 초등교사와 비교과 교사가 한 학교 안에서 같이 경쟁해야 했다. 같은 기준으로. 같은 판 위에서.







웃긴 건, 나도 수업을 들어갔다는 거다.


전문상담교사는 법적으로 '비교과교수과목' 교사다. 수업 시수를 받을 수 없다. 중등에선 그게 이미 자리 잡았다. 상담선생님은 상담하는 사람. 상담교사가 수업에 들어가서 지도하면 상담받는 학생들과 이중관계가 성립되어 상담관계가 위험해지니 수업하지 않는다고, '전문상담'이라는 과목과 '전문상담교사'라는 직위에 맞는 상식적인 문화가 당연하게도 잘 자리 잡아있다. 하지만 초등은 달랐다. 담임선생님들 수업 많아서 힘드니까 좀 도와주라고. '교사'라고 이름 붙여놓고 수업도 안 할 거면 '전문상담사' 뽑지 뭐 하러 '전문상담교사' 뽑냐고. 실제로 교감선생님이 내게 수업을 시키며 하셨던 말씀이다.


그래서 전 학년 수업에 들어갔다. 자존심이 잔뜩 긁혀서 나는 '수업'이 아니라 '학급단위 집단상담'을 하는 거라고 박박 우겼지만, 하는 일은 똑같았다. 교실에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아이들 앞에 서는 것. 근데 그건 수업으로 인정도 못 받았다. 나이스에는 담임 이름으로 들어가니까.


그렇게 수업도 들어가고, 상담도 하루에 여섯일곱 건씩 하고, 자해 자살 시도 아동학대 같은 위기사안 터지면 제일 앞선에서 총알받이로 상담하고 일 처리하고, 학교폭력 생기면 피해학생 상담에 가해학생/학부모 특별교육까지 다 하고. 이 학교에서 내가 제일 종종거리며 돌아다녔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여기 불려 가고 저기 불려 가고, 이 애 만나고 저 애 만나고, 이 부모 전화받고 저 부모 전화하고.


선생님들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아유, 난 상담교사는 못할 것 같아."


"진짜 쌤 대단해. 나는 그렇게 못 해."


"우리 학교에서 상담 선생님이 제일 바쁜 것 같아."


고맙기도 했고, 인정받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나 진짜 열심히 하고 있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비교과교사라 좋은 점수는 못 받을 테지만, 이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하는 일들을 인정해 주시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다면평가위원회 회의실에 들어갔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선생님들. 대부분 경력이 꽤 되시는 분들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어렸고, 유일한 비교과 교사였다. 다른 비교과 선생님들이 한사코 안 들어가신다길래 비교과 대표로 신규교사인 내가 들어갔다. 나보다 10살은 많으신 보건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하셨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고마우신지.


회의가 시작됐다. 각 항목의 배점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논의였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비교과 교사도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여기 기준에서 상담 업무나 위기 학생 관리 같은 항목을 추가하면 어떨까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러고는 한 선생님이 말했다.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상담 건수를 어떻게 검증해요?"


"그건 상담일지로 확인할 수 있어요. 매 상담마다 기록을 남기거든요."


"근데 그러면 상담 선생님만 유리해지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상담일지 같은 거 안 쓰잖아요."


"아, 그건... 비교과 업무 전반으로 항목을 만들면..."


"그러면 보건 선생님은요? 영양 선생님은요? 다 따로 기준을 만들어야 해요? 너무 복잡해지는데."


한 명이 반박하면 다른 한 명이 거들었다. 내가 뭔가 말하려고 하면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기준 그대로 가자.'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담교사가 담임교사보다 점수 높은 건 좀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이 회의실에 퍼졌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결국 그거였구나.


"그냥... 조금이라도 반영이 되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도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 선생님이 일 안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근데 평가 기준이라는 게 객관적이어야 하잖아요. 모두한테 공정하게 적용되려면 지금 기준이 제일 나은 거예요."


공정. 그 단어가 웃겼다. 담임 학급 운영 점수를 담임이 없는 사람한테 적용하는 게 공정한 건가. 교과 수업 연구 점수를 교과 수업이 없는 사람한테 적용하는 게 공정한 건가. 법적으로 수업 시수도 못 받는 사람한테 수업을 시켜놓고, 그 수업은 다 자기들이 한 것처럼 가로채면서, 그게 공정한 건가.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 시선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있어.'


회의가 끝났다. 기준은 바뀌지 않았다. 보건선생님이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전장에 자기 대신 내보내는 표정으로, 그렇게 미안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유, 난 상담교사 못할 것 같아.'


그 말.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이 저 안에 앉아 있었다. 내가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거 보면서 대단하다고 했던 사람들. 저렇게는 못 한다고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지금 저 회의실 안에서 '상담교사가 담임교사보다 점수 높은 건 좀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대단하다고 하고, 점수로는 깎는 거구나. 일은 시키면서 인정은 안 하는 거구나.


복도를 걸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노 때문인지, 수치심 때문인지, 무력감 때문인지 모르겠었다. 아마 다 섞여 있었을 거다.


상담실로 돌아와서 문을 닫았다. 조용했다. 초등학교에서 상담교사는 학교에 한 명뿐이다. 보건교사도, 영양교사도, 사서교사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 모여서 하소연할 동료도 없다.


'섬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에 있지만 학교의 일원은 아닌 것 같은 느낌. 같은 교사라고 불리지만 같은 교사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비담임, 비교과, 비교대. 전부 '아닌 것(非)'으로 정의되는 존재.


다면평가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B등급이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예상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까 괜찮지 않았다. 내가 일한 결과가 이거구나. 분명 그 점수가, 그 알파벳이 내가 한 일 전부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B급 교사가 된 것 같아 분하고 창피했다.


몇 년 후 제도가 바뀌어서 비교과 교사끼리 따로 평가하게 됐을 때, 그제야 좀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그 학교에서 느꼈던 그 감정은 여전히 선명하다.


"아유, 난 상담교사는 못할 것 같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그 회의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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