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일반사람처럼 살고 싶어

Part 1. ep 9. 어머님께

by 오엉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관들에게 조사를 받았던 아이가 있었다. 이웃 주민이 신고한 거였다. 그 집에서 엄마가 소리 지르고 아이를 때리고 난리가 나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학교에 상담선생님이 계시니 상담을 받아보면 좋겠다고 권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내게 말씀을 안 하셨었다. 나중에 여쭤보니 너무 짐이 될 것 같아서 미루고 계셨다고 했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울 듯한 얼굴로 내게 달려오셨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상담 부탁드려도 될까요."


활동지였다.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적어봅시다'라는 문항이 있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 제발 일반사람처럼 살고 싶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인 삐뚤빼뚤한 글씨. 그 아이가 쓴 거였다.

다른 문항도 읽었다. '집에서 나는 어떤 아이인지, 평소 나의 행동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적어보세요.'

'나는 집에서 게임중독자인 것 같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나 소리 지른다. 기억에 남는 일은 엄마가 날 때렸을 때다.'


활동지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상담이 시작됐다. 아이는 처음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이야기를 꺼냈다. 자꾸 엄마 교회 얘기를 했다. 이상하다 싶어서 아버지께 따로 연락을 드려 여쭤봤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다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셨다고 했다. 학교 같은 거 다닐 필요 없다고. 밥도 먹을 필요 없다고. 구원받으려면 매일 그 교회에 가야 한다고. 근데 남편 때문에 구원을 못 받고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6살짜리 동생은 유치원도 안 다니고 엄마랑 매일 교회에 간다고.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아이가 집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숙제도 못 하고, 몇 번씩 학교도 못 나왔다고 했다. 엄마가 학교 가지 말라고 해서.


아이를 몇 번 더 만났다. 팔을 보니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물어보니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손톱으로 팔을 긁고, 심할 때는 벽에 머리를 박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날씨 얘기 하듯이.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말해도 돼요?”


“응 괜찮아. 다 말해도 돼.”


아이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나가 뒤져 새끼야. 니 애비가 악마라고. 갑자기 공부는 왜 해 개새끼야. 뭘 또 처먹어, 먹지 마. 그 샹놈이랑 또 왜 놀아."


12살짜리 입에서 그 말들이 줄줄이 나왔다. 외운 것처럼. 매일 듣는 것처럼.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어때?"


"몰라요. 그냥 화나요. 근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긁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소매를 내렸다.








그날 그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교감선생님께서 데려다주라고 하셔서. 아파트 복도를 걸어 현관문 앞에 섰을 때, 괜히 몸이 떨렸다. '사이비에 빠진 여자의 집.'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두려움과 생경함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겐 이게 집이었다. 매일 돌아와야 하는 곳. 매일 자기 몸을 뉘어야 하는 곳.


그 아이를 그 무서운 문으로 밀어 넣고, 그 애가 괜찮을까 숨죽이며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댔다. 녹음기를 켜고. 혹시나 그 엄마가 또 욕하거나 애를 때리면 바로 신고하려고. 그렇게 엄마와 애를 떼어놓으려고.


현관문에 맞댄 귀에서는 내 터질듯한 심장 소리만 들렸다. 쿵. 쿵. 쿵. 쿵.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분쯤 그렇게 서 있다가, 결국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자꾸 그 현관문이 떠올랐다. 나는 문 앞에 5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 아이는 저 안에서 매일 밤을 보내는구나. 저 문 안에서 욕을 듣고, 맞고, 팔을 긁고,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학교에 온다. 가끔은 못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올 수 있는 날엔 온다.


그게 그 아이의 일상이구나.


상담을 마치고 아이를 교실로 보낸 날이면,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활동지에 쓰여 있던 그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엄마 제발 일반사람처럼 살고 싶어.'


일반사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이 아이한테 '일반'은 꿈이구나. 특별한 게 아니라 평범한 게 꿈이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엄마한테 잘 자라는 말을 듣고 자는 것. 그게 이 아이한테는 닿을 수 없는 삶이구나.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자연과 동식물과 친구 하며 자라는 아이. 엄마 아빠 사랑을 듬뿍 받고, 집을 최고의 안식처로 여기며,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동화를 만드는 아이. 카메라 앞에서 웃고, 그림 그리고, 부모님이랑 손잡고 바닷가를 걷는 아이.


그런 아이도 있다.


또 이 세계의 한편에는 이런 아이도 있다. 엄마의 우울증이 너무 심해 매일매일 욕설을 듣고, 맞고, 그때의 분노를 어찌할 수 없어 결국 자기 몸을 긁어서 기분을 푸는 아이. '일반사람처럼 사는 것'이 꿈인 아이.


같은 12살인데.


행복에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이 넘치고, 어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이 바닥나 있다. 그게 그 아이 잘못이 아닌데. 그 아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제 성인이 됐을 텐데. '일반사람'이 됐을까. 아직도 팔을 긁고 있을까.


그 엄마는 나아졌을까. 구원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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