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풍류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없는 풍류

by 열두달에피소드

그 아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성당 보좌신부님을 통해서였습니다.

제 아들보다 한 살 아래인 재민이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입니다. 안구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악보를 본 적이 없지만 피아노를 잘 쳐서 5세에 영재발굴단에 출연하게 되었데요. 저희 가족과 함께 일요일 아침마다 같이 성당을 가는데 볼 수 없지만 다른 감각들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재민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에게는 울림을 주었답니다. 계절이 오고 가는 느낌을 늘 저에게 이야기해 주는 재민이와 서촌에서 나고 자란 하동민 대금연주자와 임은비 가야금 병창, 강신의 타악주자와 2023년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인왕산풍류] 공연을 시작했답니다.

겸재의 그림 속 배경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설레었지만 그것도 잠시, 운영에 대한 것은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공공의 장소이기에 종로구의 허락을 받고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무료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데 특별히 후원해 주는 곳이 없어 포기하려 했는데 그때 감사하게도 아티스트 분들께서 선뜻 재능기부를 해주셨습니다.


서촌에서 나고 자란 하동민 연주자가 통인시장 근처 작업실을 열어 주어 재민이와 함께 준비했답니다. (풍류를 준비하는 과정과정이 늘 기억에 더 남는 건 왜일까요? 이 브런치에서는 공연 준비과정 중의 에피소드들도 많이 들려드릴게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 그런 게 더 재미있잖아요.) 라파엘의 집에서 재민이를 데리고 동민님 작업실로 내려가려 하는데 재민이가 신발을 벗지 않으려고 하고 두려워서 제 손만 꽉 잡고 내려가지 않으려 했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재민이에게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하는 지하 작업실은 무척 낯선 공간이었을 것 같아요. 동민님이 그냥 신발 신고 와도 괜찮다고 배려해 주셔서 재민이는 점차 공간에 적응했고 곧 스펀지처럼 아리랑을 흡수해 버리고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 대금과 함께 연주를 했답니다. (다음 글에 계속 이어갈게요..)

작가의 이전글초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