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것'
‘열두달에피소드’는 제가 대학 시절, 손으로 만든 작은 책의 제목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사라지는 것들에 유난히 마음이 갔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효율 중심의 사회 속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조용히 사라져 가는 '우리의 것'들을 보며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얼마 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 기획전.
'한옥'을 4년동안 지으며 마음고생이 너무 많아
인왕산을 자주 산책했는데
자연스럽게 만난 '선비들의 풍류'의 흔적들.
겸재정선의 화첩을 직접 보고 싶어 수소문해 보니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흩어져 있고 제가 찾아가도
수장고 안에 있어 볼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한 자리에 모아 펼쳐 보여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몇 차례나 찾아갔답니다.
그의 초기 그림에는 중국 소가 그려져 있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우리나라 소의 모습이 담겨 있더군요.
조선의 선비들도 단지 중국을 모사하기보다
우리만의 방식을 찾고자 애썼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옥을 짓고, 일상 속 작은 것부터
‘진짜 우리 것’으로 하나씩 바꿔가는 길은
정성이 필요하고, 때로는 고단하며,
어쩌면 비효율적이고 느린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할수록,
예상치 못한 감동이 스며듭니다.
“아, 이게 바로 우리 것이구나. 진짜 좋구나.”
요즘 저는,
우리 것을 배우고,
생생한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너무 좋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해나가야 할 일—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때라서 겪을 수 있는 이 과정을 즐기며 버텨보려고요.
흔적 없이 사라지기보다는,
우리 것의 본질을 알아가고, 직접 경험하고 느껴서,
다음 세대에 잘 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조금만 더 정성스럽게,
세대와 세대, 극과 극의 사이 빈틈을 연결만 해주어도
훨씬 더 좋은 문화를 가득 품은 Korea가 될거라 믿어요.
글 l 열두달에피소드
사진 l 더데이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