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소비하고 소유하기를 강요받는 세상이다.
마케팅은 점점 고도화되고 개인화되어 우리의 의지는 점점 너덜너덜해진다.
물건의 본질, 서비스의 핵심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듯하다.
알맹이가 조금 부실해도 포장이 화려하면 다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 정말 도움 되는 것들을 찾기란 피곤하다.
기업들의 추파를 그만 받고 싶기도 하다.
정치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절대다수의 표를 받아야 하는 입장으로서 화려한 언변과 수사학에 능하며 이미지 메이킹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당선된다.
어쩌면 화려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묵묵하게 아무 말 않고 일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인재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목소리 큰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착각한다.
책과 글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사람이 쓴 글은 많이 공유되고, 유명한 = 능력 있는 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대형 출판사의 책들은 거대한 자본을 뒤에 지고 날아간다.
그렇다면 포장지가 거리에 넘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원석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각자에게 쓸모가 있는 것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것을 위주로 이야기할 때
'시간의 증명'을 믿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쓰이는 글들 중에서도 보석 같은 교훈을 주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들의 알맹이는 우리가 모두 들여다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주는 증명의 힘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나긴 시간은 그것이 공갈빵인지 단팥빵인지 알아서 판단해 준다. 공갈빵은 그 긴 시간을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살아남은 글들(고전)은 위대한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맹자의 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종교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불교(반야심경), 기독교(성경), 유대교(탈무드), 힌두교(베다)와 같이 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비슷한 가르침을 준다.
예를 들면 '단식'은 인간에게 이롭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냥 단식하라고 이야기했을 땐, 실천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로서 단식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다.
불교, 기독교, 힌두교, 유대교 모두 단식의 전통이 존재한다.
(이야기로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인문학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엿보인다.)
마찬가지로 옛 현인들이나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가르침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더욱 많이 사야 행복하다. 남들보다 좋은 차를 몰아야 행복하다. 끊임없이 남을 깎아내려야 한다."
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수천 년의 지혜인 것이다.
지금과 같이 너무나도 다양한 제품과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사회가 혼란스럽다면, 시간의 증명을 믿어보고 오래된 것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뇌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