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를 때 "이러다가 고르는데 시간을 더 쓰겠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본 경험도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질 때, 역설적이게도 불안함을 느낀다.
배리 슈워츠가 주장한 선택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무한한 선택의 자유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마비시키고 불행하게 만들며, 진정한 행복은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것'으로 만족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1)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은 우리에게 선택을 하지 않을 자유를 주는 듯하다.
수십 개의 메뉴 중 하나를 고를 때 발생하는 선택의 피로를 줄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요리전문가들이 골라준 요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고
무한한 선택의 자유는 우리를 오히려 피곤하게 만든다.
또한 이 자유로움의 과잉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경우도 생긴다.
송길영 작가의 책 '시대예보 : 호명사회'에서 시뮬레이션 과잉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끝없이 계산·상상만 하느라 정작 현실에서 행동을 못 하게 되는 상태를 뜻하는데, 시뮬레이션 과잉도 일종의 선택의 역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전의 글에서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페르소나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로를 찾는 것만큼이나 무한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영역이 없을 것이다.
또한 선택의 무게감이 그 무엇보다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선택의 유예가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평생 일하는 평균 시간이 8만 시간이라고 한다.
7만 5천 시간의 적확함을 위해서 5천 시간의 갈팡질팡은 꽤나 합리적이지 않은가.
5천 시간은 하루 8시간 노동으로 2년에서 3년 정도 걸리는 시간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이에겐 3년의 유예기간이 있어야 하며,
이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는 시간이어야 한다.
앞으로 AI와 로봇들이 인간들의 노동력을 대부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일에 대한 보람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인간의 노동은 무의미해진다.
하기 싫은 일을 참고하며 커리어를 쌓았는데, 지금까지 해온 일이 무의미해진다면 어떨까.
미래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추어서라도, 이 유예기간은 꼭 필요하다.
한 점을 종이 위에 찍으면 다양한 각도로 무한한 선을 그려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특정한 각도로 그 선들의 쏠림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회계사, 의사, 변호사 등등)
미래에는 그 선들의 다양성이 더욱 증가하고 정말로 개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대다수가 무기력에 잠식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이 황금빛이든, 잿빛이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고, 성공적인 선택이다.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선 무슨 선택이든 일단 하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듯이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에너지 관리를 꼽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도 선택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걸로 유명하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선택 에너지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분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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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chwartz, B. (2004). The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 Harper Perenn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