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이 아니라 데드라인이 코앞에 있는 정책 연구 문헌 정리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봤다. 인생의 굵직한 일들을 겪을때 마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털어놔야 하나봐. 그동안 사용했던 플랫폼이 있긴한데 남자친구, 아니 전남자친구 명의로 개설했던 공동 블로그였던지라 나만의 공간이 없더라고. 그래서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브런치로 들어왔다. 며칠 새 예비 신랑에서 전남친이 되어버린 그가 나에게 술먹고 거짓말한 걸 들켰던 올해 초에 브런치에다 사과문을 써서 보내줬던게 기억나네. 사소한 거짓말로 신뢰를 깨지 말라고, 결혼 생활은 신뢰가 전부라고 펑펑 울면서 먼저 해 넣은 가전값 내놓으라고, 계속 이런 식이면 나는 그냥 결혼 안할 수도 있다고 했던 게 올해 초였는데. 아, 그때 헤어졌어야 했을까.
돌이켜보면 다 나의 업보인것도 같다는 생각도 한다. 방송 프로듀서가 되고싶었던 새내기 시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재밌게 봤었는데 한 가지 마음에 안들었던건 주인공들마다의 서사가 참 별나다는 것. 그 당시 나는 수능에 약간 실패했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별하거나 특이한 경험이 없었다. 엄청나게 화목한 집안은 아니었으나 한국의 평범한 가족 안에서 감사하게도 무탈히 자라왔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 주인공들과 달리 인생을, 고통을 모르는 내가 어떻게 프로듀서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었다. 나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거 아니냐고.
그러한 철없던 원망에 대한 응답일까. 힘들게 겨우 취업해놓고 미래가, 비전이 어쩌구 하면서 진로를 고민했다. 친구들이 착착착 연차와 경력을 쌓아가는데 퇴사와 동시에 미래가 정해져있지 않은 대학원을 선택하면서 일반적인 루트를 비로소 탈선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거기에다 아빠의 폐암 4기 선고를 듣고 내가 아쉬워했던 그 '평범함'에서 드디어 한참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나도 뭔가 서사가 생겼구나.
그렇게 1년이 지나 내 또래보다 조금 일찍 아빠를 잃었다는(웃기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보다도 훨씬 이르게 부모를 잃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다) 다름 정도만 안고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내 진로야 뭐 예상했던 바고 주변에 공부하는 사람 천지니까, 이게 인구 전반적으로 봤을때는 특이할 지 몰라도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업이 길어지니 아무렴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결혼을 망설였던 것도 아쉽지만 이해됐다. 그러다 나를 정말 사랑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땐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서 였는지 전남자친구는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계획했고, 우리는 결혼 준비에서 큰 문제 없이(앞서 거짓말 들킨걸로 파혼을 입에 올렸던 건 당시엔 심각했지만 오랜 믿음과 사랑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했던 이슈라고 생각) 8월의 결혼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족이 될 준비를 하면서 더 단단해진 연인이 되었음을 느끼며 다시 조금은 평범한 인생 궤적에 올라탄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친구와 첫 연애, 그것도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다는 클리셰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름의 스토리를 갖고 평범하게 결혼을 할 줄 알았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 갑자기 결혼을 미뤘으면 좋겠다고 하시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 연기 전언에서부터 일주일간 짧고도 길었던 말들과 기다림 끝에 우리는 파혼을 했다. 결과론적으로 나에게 다들 잘 헤어졌다고 한다. 조상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도왔다고. 반대하는 결혼해서 고생만 했을거라고. 며느리 사랑 넘치는 집안으로 가도 힘든게 결혼인데 잘됐다고. 부모님 설득 못하는 남자를 어떻게 믿고 사냐고, 부모 뒤에 숨어버리는 무책임한 남자 어떻게 의지하냐고. 파혼. 나중을 위해 사실 잘 한 결정.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와중에도 생각했다. 파혼이라는 경험이 하나 쌓였구나, 나 이제 정말 안 평범하다고. 내겐 첫 연애였고, 첫 이별인데 그게 파혼이었다. 참나, 그냥 헤어져도 감당이 안됐을텐데 7년을 만나고 이별을 하는데 결혼식을 한 달 앞둔 파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다니.
그의 부모님한테서 파혼 의사를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후 미련없이 결혼 사진을 지우고, 본식 관련 예약들을 취소하면서, 채 살아보지 못한 신혼집에서 내 짐을 부지런히 빼면서 결혼식이나 혼수에 대한 기억을 흐렸다. 문제는 결혼이라는 이벤트에 대한 기억들이 생각보다 쉽게 가라앉으며 날 놓아버린 사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는 것이다. 나를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했던 사람. 나를 지켜줄 수 없어서 놓는 거라고 했다가, 시간이 지나니 사실 결혼생활이 두려웠던 자기 탓이라고 말했던 너. 지난 주 일요일에 네 뺨이라도 때리고 왔어야 했는데 나는 너 뭐가 예쁘다고, 이해한다고, 행복을 빌어준다 말하고 왔을까. 다 정리한 척, 놓을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정리가 안된다. 살면서 가장 활짝 폈던 마음을 갑자기 다 접어서 버리는 게 쉬울 리가 없다.
글을 쓰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코끼리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코끼리 생각하게 만드는 꼴이 된 것 같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사람인데 왜 이렇게 자꾸 보고싶은지 괴롭다. 잔인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