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로 했던 날짜가 다가온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야 하는 건 아닌지, 피로연과 답례품은 어찌할지, 청첩장 보내기도 조심스럽고 죄스러웠는데 파혼하고 나니 걱정이 없다. 지자체 지침에, 협조 안하는 갑질 식장 소리에 애태우는 예비 신부였는데 이제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다니. 이런 식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기도 하네.
얼마 전에 그를 만났다. 결혼하는데 차 한 대는 있어야 한다며 엄마가 준비해주셨는데 나의 짧은 보험 이력으로 인해 공동 명의로 사놨기 때문이다. 주차 난이도가 있던 신혼집 들어가기 전에 미리 연습한다고 내가 주로 쓰기도 했고, 엄마가 마련해준거라 차는 내가 갖기로 했다. 괴로운 마음에 차값도 내놓고 네가 가져가라고 해버리고도 싶었지만 딸내미 차 사주는게 당신 로망이었다며 나중에 팔아도 되니 우선은 가져오라 하셔서 명의이전 처리를 하느라 그 얼굴을 한번 더 만났다. 원망하지만 또 너무나 보고싶던 그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 구청으로 걸어가며 이혼하러 가는 법정에서 만나는 부부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얘기했더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이라며 웃었다. 너에게 이 파혼은 확신없는 사람과의 불행을 막았던 그저 용기있는 결단이었기에 그런 걸까. 지켜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가장 비참하고 아프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던 게 거짓말 같진 않았지만 너는 선택을 했고, 나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던 데서 오는 간극이었을까.
원래 결혼 예정일이었던 그 날 뭐하냐고 물으니 친구와 당일치기로 동해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도 아는 그 이름, 나도 아는 그 장소. 너는 가면서 내 생각을 엄청 하게 될 거야. 바다 보면서도 내 생각을 하게 될 거야. 머리 식히러 떠난 바닷가에서 마음 무거워져 돌아올 것을 내가 굳이 저주하지 않아도 아마 그럴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그 날 뭘 할 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너처럼 나도 어디 멀리 바람 쐬고 오고 싶은데, 나도 알거든. 멀리 떠난 만큼 또 생각날 것임을. 나는 그냥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려 한다. 그간 제일 곁에서 도와주고 위로해준 절친들이 시간 되니 만나자고 하는데, 내 결혼식이 있었다면 가지 못했을 남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보면 된다고 해서 약간 마음이 꽁한 상태거든. 꼭 굳이 남의 결혼식을 들렀다 온다고 말을 했어야 했나. 오랫동안 기쁘게(그리고 전전긍긍하며) 준비해 왔지만 하지 못한 내 결혼식이 아직 아쉽고 슬픈데 말야. 내 본식 드레스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너도 보았잖아! 하지도 못하고 할 필요도 없는 바보같은 투정을 여기에 적어본다.
배경음악 리스트까지 다 뽑아놓으며 거진 다 구상이 끝났던 결혼식이긴 해도 그런 리추얼에 대한 미련은 가장 빠르게 날려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남네. 이렇게 다 추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 못난 성정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을까 미안하고 겁난다. 그럴 때마다 되뇌인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든 뭐든 너는 결국에는 나와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놓은 사람이었다는 것. 마무리조차 무책임하게 회피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더 다치지 않고 냉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