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반성의 시작
사랑의 완성이 꼭 결혼이라는 형태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작년 가을에 진지하게 결혼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길게 1년 정도 잡고 결혼을 준비하던데, 우리는 언제쯤 하게 될 지 물었다. 그는 나에게 반문했다. 왜 결혼을 하고 싶냐고.
왜 하고 싶었을까? 나는 사랑의 확신을 원했었다. 군인과 대학생, 복학생과 취준생, 취준생과 직장인, 그리고 직장인과 대학원생. 우리는 7년 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서로의 입장과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자연히 갈등이 생겼지만 싸우면서, 대화하면서, 이해하면서 연애해왔다. 권태기도 없었고, 서로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은 흔들림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사랑을 영원히 내게 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싶었다. 결혼을 통해 법적이고 제도적으로 사랑을 보장받음으로써 영원한 내 편을 갖고 싶었다. 내 법적 보호자가 나이들어가는, 내가 지켜줘야하는 내 엄마가 아니라 그가 되길 바랐었다. 아빠가 투병하는 동안 엄마가 아빠를 지켜줬듯이 내가 너를 지키고 싶었고, 나 역시 너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2017년 1월 목요일 오후 다섯 시. 아빠가 돌아가셨다. 제주에 사는 누나를 만나러 가기로 되어 있던 그는 공항으로 향하던 중 내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와줬다. 휴가로 빼놓았던 일정을 오롯이 날 위해 써줬고 발인, 장지까지 함께 해줬다.
스물 아홉이었다.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은 나이에 그는 나름의 최선을 다 해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남이었다. 나는 딸을 상주로 못 올리니 사촌 오빠를 상주로 해야한다는 어른들 말에 반대해서 기어코 나와 여동생을 올리고, 엄마까지 여자 셋이서 까만 한복 입고 서있으면 처량해 보일까봐-사촌오빠를 세우라고 할까봐, 아들 못 낳았다고 대리모 운운하며 마음 고생시킨 우리 엄마 또 괴롭게 할까봐-일부러 까만 바지 정장을 입고 서있었다. 현직에 계시다 돌아가셨기에 얼굴도, 이름도, 직함도 모르겠는 조문객들을 하염없이 맞으면서 지쳐갈 때도 그는 내 옆에 있어줄 수 없었다. 종종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홀로 멍하니 상주 의자에 앉아 고요한듯 소란한 접객실을 바라봤다. 철저히 양분된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외로웠다. 상주이자, 접객 최종 결정권자로서 정신없는 나를 그가 조금만 더 챙겨주길 내심 바랐었다. 그가 나의 그런 사정을 조금만 더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길 바랐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그는 남이었고, 무심한 막내로 자란 그에게 더 바라는 건 내 욕심이라고 여겼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어주고, 피곤한 얼굴이라도 매일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었다. 그 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사무치게 외로웠지만 너는 이런 기분 안 느꼈으면 좋겠다고. 나는 네 곁에 든든한 가족으로 있어주겠다고. 그래서 내가 엄마를 언젠가 잃는다면, 그 때에는 그 마음으로 네가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결혼이 왜 하고 싶냐는 물음에 처음으로 그 때의 심경을 얘기했었다. 그저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에 목 매는 것도 아니고, 남들 하니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때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냐고. 마냥 행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책임질 게 많아지는 선택인걸 알면서도, 불행해지더라도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네가 아플 때 내가 너를 책임질 사람이 되고싶고, 반대로도 내 보호자가 너였으면 좋겠다고. 울면서 이런 말들을 토해내는 나를 보고 몰랐었다며 눈물 흘리며 안아주던 그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공부가 끝날 때까지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지었었다. 그는 이런저런 투자에 실패해서 돈을 모으지 못했고, 나도 결국엔 학생이었으니까. 헤어지지 않았던 것은 서로 사랑했고 서로의 길을 지지해주는 연인이라는 데는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결혼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간 몰라줘서 미안했다며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충분했기에 결혼은 현실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될 때까지 묻어두기로 했었다.
얘기를 나눈 지 한 달여 지난 10월. 그는 내게 그 해 말 원룸 전세가 끝나면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함께 보러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갑자기 또 왜?그는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를 보는데 주인공이 아파트에 살면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삶이 좋아 보였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 재차 물어보니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지금의 무기력한 원룸 생활을 벗어나고, 돈도 모으고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내가 볼 필요가 있냐고 기껏 접었던 욕심이 튀어나올까 애써 누르며 말하는 내게 ‘나중에라도 같이 살 수 있으니까'라며 나를 이끌었던 너였다. 일상 속에서 점점 구체화되는 집 얘기에 이게 프로포즈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준비를 나는 막을 의지가 없었다. 지금 오니 그 때 결혼에 대한 입장이 왜 바뀐건지 더 대화했다면 이런 결말은 없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제동을 걸기에는 나는 너무나 너라는 울타리를 갈망하고 있었다. 뒤늦은 말이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