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각형] Ep5. 왜 보고 안 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육각형은 점.

by ephemeral

“왜 보고도 없이 통보하고 외근 나가요?”


얼굴이 붉어진 선임 부장이

우리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우리가 놓친 게 뭔지

빠르게 머릿속을 훑었다.


퇴근 30분 전,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나는

매장 디스플레이 정리 일정이었다.


일주일 전,

팀장에게 구두 보고를 했다.

그 후, 팀 메신저 방에 일정 공유를 남겼다.

두 매장은 각각 나와 동료가 나누어 방문한다고 적었다.

각 매장 점장에게는

방문 날짜와 시간을 메일로 보냈다.

팀장과 선임 부장을 참조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팀 캘린더를 업데이트 했다.


기록은 충분했다.

그래서 되물었다.

“팀장님께 구두 보고 드렸는데,

이 건은 부장님께도 별도 보고가 필요했나요?”


부장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아… 저한테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고,

구두 보고가 된 건 몰랐습니다.

제가 팀장님과 소통에 오류가 있었나 봅니다.”



오류.

그 단어가 참 편리했다.

우리가 남긴 메신저 기록도,

참조에 넣은 메일도,

구두 보고도

모두 그 한 단어 안에서 사라졌다.


팀장은

우리가 ‘통보 후 외근’을 간다며

부장에게 노발대발 했다고 한다.


다만, 머리 근육을 안쓰는 그녀는

내용을 까먹어서 화내고 악을 쓴 적은 더러 있었다.


하지만, 부장은

앞뒤 확인 없이

우리에게 냅다 화를 퍼부었다.


보고는 했는지보다

누가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다음 날, 부장은 평소보다 상냥했다.


당일 남아있던 팀 동료에게

“오해는 풀게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그 말은 실행되지 않았다.


팀장은 유난히 밝았다.

자신은 직접 화내지 않았고,

의도치 않게 이간질도 해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도 문책받지 않았다.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책임은 남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은 많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사실 앞에서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는

침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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