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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an 15. 2019

#7. 7년의 숙원, 울릉도

기적과 같은 노을은 시린 눈을 비벼서라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7년 전, 대형 SUV를 끌고 포항으로 향했다. 자동차 미디어 최초로 울릉도에서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밤길을 달려 새벽녘에 도착했고 자동차 선적 시간도 넉넉했다. 그런데 내 앞에 예닐곱 대의 차가 있었고 다섯 대만 선적됐다. “제발 차를 실어달라”고 담당자에게 읍소를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아니 공간이 없는데 어떻게 싣는다 말여?” 그렇게 나와 촬영 팀을 놔두고 배는 떠났다. 멀어져 가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꾸짖었다. 

울릉도행 배에 차를 선적하기 위해선 전날부터 차를 대 놓고 기다려야 한다. 자동차 선적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무조건 선착순이다. 가장 앞에 자리해도 울릉도로 들어가는 생필품이 많다면 차를 실을 수 없다. 난 이걸 몰랐다. 시승차 스케줄 때문에 다음 날 배를 탈 수도 없었다. 뭐든 만들어야 했던 난, 포항에서부터 7번 국도를 타고 올라오면서 해변과 어촌을 배경으로 자동차를 촬영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멋져 꽤 괜찮은 이미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성에 차진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다시 울릉도에 갈 기회가 생겼다. 3년 전의 쓰라린 기억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울릉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동선과 스케줄도 빈틈없이 짜 맞췄다. 눈을 감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울릉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시승차 스케줄도 넉넉하게 잡아뒀고 혹시 몰라 출장비도 두둑하게 신청했다. 이번엔 SUV뿐만 아니라 바이크도 한 대 더 끼워 넣었다. SUV 하나로만 이미지를 만드는 것보다 바이크가 들어가면 더욱더 멋질 것 같아서다. 상상해 보시라. 붉게 물든 노을 사이로 바이크가 앞바퀴를 들고 달리고 그 뒤로 큰 SUV 한 대가 뒤따르는 모습을. 그래서 모터사이클 레이서 출신까지 섭외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울릉도에 꼭 들어갈 작정이었다. 나의 울릉도행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날씨밖에 없었다. 울릉도행 배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바람이 세거나 파도가 높으면 뜨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발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또 울릉도에 가지 못했다. 날씨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뭍에서 떠나는 모든 여객용 배편이 긴급 점검을 이유로 무기한 출항 정지됐다. 온 국민이 애통해하고 비통해하는 비극 속에서 배를 타지 못한 것을 한탄할 수 없었다. 그저 ‘울릉도는 나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울릉도에 갈 생각 자체를 접었다. 

4년이 흘렀다. ‘오는 12월에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통된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울릉도는 섬을 한 바퀴 휘도는 일주도로가 없었다. 시계로 치면 1시와 3시 사이에 도로가 없어 서쪽 끝까지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없다. 섬 가운데가 높고 가팔라 도로를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 도로가 뚫리는구먼. 자동차로 여행하기 좋아지겠어. 가볼까? 아냐, 울릉도는 나랑 안 맞아.’ 애써 울릉도를 외면했지만 울릉도가 자꾸 눈에 밟혔다.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그물 때문에 울릉도에서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다’는 뉴스가 보였고, TV를 통해 연예인이 울릉도에서 낚시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볼까?’

메르세데스 벤츠의 GLC 350 e 두 대에 짐을 실었다. 사진과 영상 촬영 장비가 워낙 많아 스타렉스 한 대를 더 추가했다. 그렇게 또 포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주적주적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포항에 닿으니 다행히 하늘이 맑다. 벤츠를 깨끗이 세차하고 바로 포항여객터미널로 향했다. 7년 전 내가 발길을 돌렸던 그곳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오후 3시쯤 도착했는데, 내 앞에 차가 한 대도 없다. 폴포지션이다. 이제 내일 아침에 차만 실으면 된다.

허름한 여관방에 남자 넷이 모여 있는 꼴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그렇게 됐다. 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두 번이나 실패했던 울릉도를 내일은 갈 수 있을는지 걱정됐다. 반면 고정식은 코를 크게 골며 잠만 잘 잔다. 아마도 저 인간 때문에 잠들긴 그른 것 같다.

날이 밝았다. 하늘도 화창하다. 그런데 파도가 높아 배편이 1시간 연기됐다. “아저씨 1, 2등인데 차 실을 수 있죠?” “오늘 월요일이라 울릉도로 들어가는 생필품이 많아요. 또 파도가 높아서 선적량을 줄여야 해요. 장담 못 합니다.” 울릉도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대의 트럭이 배 안까지 드나들며 짐을 내리는 걸 봤다. 트럭이 그만 좀 왔으면 좋겠는데 줄 서서 선적을 기다린다. 그렇게 2시간가량을 애태우며 기다렸고 이윽고 벤츠 두 대를 포함해 총 다섯 대의 차가 실렸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차를 실었다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중간에 파도가 심하면 배를 돌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파도가 높았다. 비도 약간 내렸다. 배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게 심상치 않았다. 마치 놀이동산 바이킹을 탄 것처럼 울렁거렸다. 많은 사람이 비닐봉투를 입에 대고 토악질을 했다. 누군가는 신음을 내며 고통을 호소했고,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진짜 바닥에 눕거나 엎드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울릉도를 가야 하나?’ 멀미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멀미를 할 것만 같았다. 

지옥과 같은 3시간이 지나자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듯한 거무스름한 기암괴석과 절벽, 빼곡한 나무, 가파른 산등성이. 울릉도다. 그렇게 7년 만에 삼고초려 끝에 울릉도에 닿았다. 

울릉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웅장하며 신비로운 섬이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의 기적처럼 아름다운 노을은 시린 눈을 비벼서라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순간만큼은 하늘과 바다를 비롯해 모든 만물이 아름다워진다. 심지어 고정식도 예뻐 보인다. 그래서 기적과 같은 노을이다. 노을이 지면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들의 2부 공연을 펼친다. 한국에서 별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이 처음이다. 별똥별도 두어 번 봤다. 기적의 노을과 별들의 공연만으로도 울릉도에 가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그날 밤 울릉도는 7년간 기다린 내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위로했다. 난 그저 오도카니 앉아 파도 소리 그윽한 밤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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