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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an 09. 2019

#6. 잡지사가 잡지사를 탈피하며

13년간 매달 어떻게 해야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모터트렌드>는 매년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다. 2018년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나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다. 소비자들이 여러 자동차 브랜드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익스피리언스 데이는 이 땅에 없었던 이벤트였다. 울릉도 영상과 화보도 자동차 미디어로는 최초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편집장이 바뀌었다는 것. 잡지사에서 편집장 바뀐다는 건 가장 큰 변화다. 편집장의 이념과 철학에 따라 책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前前 편집장 이경섭은 사람이 중심이 된 자동차 전문지를 만들었다. ‘차도 사람이 만들고 타는 것도 사람이다’라는 농도 짙은 인간 중심 철학이 책 곳곳에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많이 실렸고, 인터뷰이들이 차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 등 사람 냄새가 짙게 밴 책을 만들었다. 자동차 여행기도 많이 실렸는데, 당시 경쟁 매체에 있던 난 그 여행기들을 읽으며 ‘<모터트렌드>는 참 재미있게 일한다’는 생각을 했다.

前 편집장 김형준은 업계에서 ‘준비된 편집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집장이 되자마자 많은 변화를 꾀하고 일궈냈다. 책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송두리째 바꿨다. 독자와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고정 꼭지를 만들며 많은 정보를 차곡차곡 담아냈다. 그렇게 <모터트렌드>는 한 달 내내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정보가 담겼다. 특히 그는 ‘잡지도 예술의 영역에 있다’라는 고고한 가치를 책에 담기 위해 멋지고 우아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 잡지업계가 힘들다. 자고 일어나면 폐간하는 잡지가 생길 정도다. 예전에 돈을 긁어모았던 잘 나가던 잡지도 ‘근근이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럼에도 <모터트렌드>는 여전히 굳건하다. 두 명의 선임 편집장이 좋은 씨앗을 뿌려 깊이 뿌리내리고 굵고 튼튼한 줄기를 키워낸 덕분에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내가 어느 날 불현듯 편집장이 됐음에도 <모터트렌드>는 모진 풍파를 잘 버티고 있다. 

편집장이 되고 여섯 권의 책을 만들었다.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빠른지 새삼 놀라워하며, 시간을 복기하듯 여섯 권의 책을 읽는다.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전임 편집장들이 일궈낸 것에 그저 더부살이하듯 붙어있는 꼴은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앉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안주할 수는 없다. 굳건한 뿌리가 내리고 단단한 줄기가 올라갔다 해도 지속적으로 햇빛과 양분을 주지 않으면 시나브로 병들어 종래에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잡지 업계가 힘들다. 도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잡지 업계가 힘들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오래전부터 독자와 소비자들은 정보를 휘발성으로 접하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다. 포털사이트는 이런 소비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들의 정보 유입량과 소비량 실로 방대하다. 더불어 소비자들은 정보의 습득 과정도 쉽고 간결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글과 이미지가 아닌 동영상으로 정보를 검색한다. 이미 유튜브는 구글에 이어 세계 검색량 2위에 자리했다. 

그런데 잡지는 어떤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책을 만들어 한 달간 소비한다. 그리고 또 한 달, 한 달이 쌓이는 구조다. 반면 유튜브는 1분에 5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물론 <모터트렌드>는 자동차 전문지로서 깊이 있는 정보와 차별화된 콘텐츠로 휘발성 짙은 기사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이 변했으니까. 

지금 잡지계가 어려운 이유는 시대적 흐름과 조류에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새바람이 불어올 때 그 바람과 시류에 너무 둔감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잡지 업계가 힘들면 잡지계를 떠나면 될 일 아닌가. 그래 떠나자!’ 

나는 <모터트렌드> 편집장으로 선언 아닌 선언을 하나 할까 한다. 이제 <모터트렌드>는 책만 만드는 일개 잡지사가 아니다. <모터트렌드>는 자동차 콘텐츠 전문 제작사다. 이미 <모터트렌드>는 많은 것을 하고 있다. 브랜드와 협업해 여러 텐츠를 생산한다. 2018년 12월호 별책부록으로 제작한 울릉도가 대표적인 예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와 함께 책과 영상을 제작했다. 익스피리언스 데이도 책만 만들던 것에서 탈피한 도전적인 행보로 봐주면 좋겠다. 아우디, 쉐보레, 페라리, 미니, 재규어, 랜드로버, 포르쉐, 르노와 함께 행사를 치렀고 행사 내용을 콘텐츠로 제작해 책에 싣고 카카오에 납품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업무 환경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부서를 신설했다. 자동차 전문지로는 유일하게 디지털 콘텐츠 팀이 따로 있다. 한 달 기간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콘텐츠를 생산해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와 SNS에 노출한다. 영상제작팀도 자동차 전문지로는 유일하다. 책과 연계한 동영상 콘텐츠와 자체 영상 콘텐츠를 생산한다. 앞으로 영상 콘텐츠가 더 많아질 것이다. 독자들이 혹할만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모터트렌드>는 콘텐츠 제작사임과 동시에 공급 및 배포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촬영한 울릉도 영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됐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홈페이지, 유튜브를 통해 수십만 명이 영상을 봤다. 더불어 영상은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에 제공됐고 그들 채널을 통해서도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모터트렌드>가 자동차 콘텐츠 전문 제작사 겸 공급사로 변모한다고 해서 책을 안 만드는 게 아니다. 책은 <모터트렌드>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지금도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사를 탐닉하는 독자가 많다. 책은 우리가 생산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가장 큰 채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13년간 책만 만들었는데 잘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모터트렌드>는 지난 13년간 매달 자동차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며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걸 161번했어요. 여기서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하죠?”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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