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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Nov 13. 2018

#5. 행사의 왕

수익이 없다면 운영진 입장에선 아무리 행사를 잘해도 잘한 행사가 아니다

<모터 트렌드> 미국판은 매년 두 개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나는 1월호에 실리는 ‘Car Of The Year’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호에 실린 ‘Best Driver’s Car’다.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는 오랜 역사(1950년부터 시작했다)와 함께 공정성으로 세계적으로 공신력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선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가 좋은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만약 그들의 차가 수상하면 이곳저곳에 광고를 한다. 지난해 쉐보레 볼트 EV가 1위를 차지하면서 GM은 여러 국가에 그들의 전기차가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에 선정됐음을 크게 광고했다. 이때 <모터 트렌드>는 로고를 광고용으로 사용하는 대가로 브랜드로부터 돈을 받는다. ‘올해의 차’에 참가하기 위해 돈을 내고 수상을 했을 때도 또 돈을 내야 하는 국내 구조와는 다르다. 세상엔 수많은 ‘올해의 차’가 있다. 그중에서 <모터 트렌드> ‘올해의 차’가 공신력을 갖게 된 주된 이유는 ‘올해의 차’ 선정의 첫 번째 목적이 수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1위 자리를 판매하지 않았기에 그 공정성을 인정받아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차’가 됐다.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도 <모터 트렌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대형 기획이다. 자동차의 종합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올해의 차’와는 달리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는 오로지 운전의 즐거움만을 탐닉한다. 기름을 많이 먹어도 가격 대비 가치가 낮아도 상관없다. 운전자가 얼마큼 운전을 즐겼는지가 가장 중요한 척도다. 물론 그 선정 과정에서 모든 독자가 수긍할 만한 여러 수치를 제시하고 다양한 형태의 도로와 서킷에서 자동차를 평가한다. 

<모터 트렌드>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는 ‘올해의 차’보다 역사가 짧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선은 이런 자동차 경연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출시되는 모든 차 중에서 운전이 가장 재미있는 차를 선정한다’는 포맷은 마치 재능 있는 래퍼를 뽑는 <쇼미더 머니>처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물씬 풍기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12대의 차가 출전해 그들의 재능과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재미있는 건 <모터 트렌드>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에도 자동차 회사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경연이 펼쳐진 라구나세카 서킷에선 포르쉐 북미 관계자들, 디트로이트에서 건너온 쉐보레 담당자, 애스턴마틴과 맥라렌의 영국 지원팀,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람보르기니 직원들이 그들의 출전차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고 0.01초의 랩타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기획사에서 그들의 연습생을 관리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다니며 노심초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모터 트렌드>도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더욱 강화하고자 미국 공군기지에서 ‘지상 최대의 드래그레이스’를 펼치기도 한다. 출전차들이 모두 모여 한꺼번에 400미터 경주를 하는 것이다. 영상을 보면 정말 장관이다(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는 매년 그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올해는 무려 40페이지에 걸쳐 그 내용을 소개했다. 덕분에 11월호가 약간 더 두꺼워졌다. 아마 내년이면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터 트렌드> 한국판을 만드는 입장에서 매년 이런 대형 기획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재미도 있으면서 훌륭한 정보 전달력을 지닌 기사를 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럽다. 이런 큰 기획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그들은 이걸 매년 한다. 물론 돈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그만한 인력이 있어야 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한 기술력과 노하우도 동반돼야 한다. 

‘모터 트렌드×카카오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준비하면서 ‘미국판 놈들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지난 몇 달간 스트레스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은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행사를 하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하니까. 어찌어찌해서(참여 브랜드를 늘리며) 돈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행사 후에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회사가 그렇지만, 수익이 없다면 운영진 입장에선 아무리 행사를 잘해도 잘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써야 할 곳은 많은데 가진 돈은 한정돼 있을 때의 걱정과 참담함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그래도 3년 전 ‘패밀리 데이’를 했을 때보다 훨씬 큰 비용을 운용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다. 

애초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기획하면서 미국판 ‘올해의 차’와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처럼 연중행사로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익스피리언스 데이’가 아닌 ‘익스리리언스 위크’까지 생각한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포부와 호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미쳤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책만 만들던 내가 여러 자동차 브랜드와 여러 사람이 참가하는 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건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래서 이벤트 전문 대행사 그릿 모터테인먼트와 함께 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수많은 이벤트를 진행한 역량 있는 회사다. 그들이 기획과 진행에서 많은 부분을 해소해줘서 할 수 있었다. 

이제 며칠 후(10월 23일)면 몇 달간 많은 사람이 야근하면서 준비한 ‘익스피리언스 데이’가 열린다.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올해의 차’나 ‘베스트 드라이버스 카’처럼 매년 할 수 있을까?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매년 하면 언젠간 <모터 트렌드>만의 고유한 자산이 돼 많은 사람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이벤트가 될까?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 꼭 참여하고 싶은 행사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매년 하면 난 마침내 대머리가 될까? 행사를 주기적으로 하면 언젠간 내가 이 바닥의 ‘행사의 왕’이 돼 돈을 긁어모으는 건 아닐까? 요즘 고민과 걱정, 잡념과 상념이 메시그릴처럼 엮여 뇌를 옥죄고 있다. 우선은 행사에 집중하고 그 뒤에 생각해보련다. 부디 이번 행사가 아무 사고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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