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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Oct 12. 2018

#4. 이달의 편집장

편집장을 매달 돌아가면서 하는 건 어떨까?

“우리 매달 편집장을 돌아가면서 할까? 이름 하여 ‘이달의 편집장’ 어때?” 편집장의 제안에 에디터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일 오후 3시를 넷플릭스 시청 시간으로 하자’도 그랬고, ‘야근 금지령’도 그랬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울림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메시지가 전혀 없는 그저 헛소리만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는 있다. ‘이달의 편집장’은 ‘너희도 편집장 해봐라. 내가 요즘 머리가 더 많이 빠지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굵고 무거운 메시지가 담겼다(물론 에디터들은 그 심오한 뜻까지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아는데 모른 척했을 수도 있고). 실제로 요즘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편집장 자리에 앉은 지 넉 달째에 접어들면서 방과 마룻바닥, 침대, 소파에 나뒹구는 머리카락이 많아졌다. 편집장 자리가 신경 쓸 게 많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가 많아져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술과 담배, 독거로 인한 영양 불균형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나이 또래에 비해 아직은 풍성하고 흰머리도 없다는 것이다. 

익숙지 않은 업무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골머리를 앓은 게 탈모의 원인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에디터였을 때는 내 일만 하면 됐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 물론 그 와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일정이 안 잡히거나 기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내 일이니까 그것만 하면 된다. 다른 에디터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편집장은 각각의 에디터 일도 내 일이다. 그들의 모든 원고를 봐야 한다. 원고가 진행되지 못했을 때(우리는 ‘빵꾸’라고 한다)는 다른 기사로 때우는 것도 내 몫이다. 여기까지만 한다면 편집장질도 할 만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터 트렌드> 디지털 콘텐츠 팀이 신설되면서 인원이 많아졌다(디렉터는 10월에 입사한다). 일이 더 많아졌다는 말이다. <모터 트렌드> 홈페이지도 새로운 오픈(10월 5일)을 준비 중이다. 이에 따른 세세하고 소소한 업무들이 차곡차곡 가중되고 있다. 10월호엔 책 디자인 리뉴얼을 하면서 미술 팀, 경영진과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독자들이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책도 인쇄가 잘되는 종이로 바꾸면서 약간 더 두꺼워졌다. 

이달도 여러 업무가 달려들어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 두피와 모공이 이렇게 수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경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난 전임 편집장들처럼 ‘준비된 편집장’이 아니다. 편집장 자리를 탐한 적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이 자리가 내게 왔다. 준비되지 않은 편집장에게 닥친 편집장 업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성이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이달의 편집장’을 제안한 것도, 편집장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나처럼 이성의 끈을 놓지 말라는 깊은 뜻도 내포돼 있다. 만약 내가 편집장 자리를 대비해 조금이라도 경험치를 늘리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머리카락을 조금은 덜 잃지 않았을까? 탈모 방지 샴푸를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탈모 클리닉을 검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험은 이렇게 중요하다. 

<모터 트렌드>가 13주년을 기념해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준비하는 것도 ‘경험의 공유’가 가장 큰 이유다. 잠깐 광고를 하자면, <모터 트렌드>와 카카오가 함께 오는 10월 23일 인제스피디움에서 <모터 트렌드> 독자 130명을 대상으로 하는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준비하고 있다(지난 몇 달간 내 머리카락을 가장 많이 뜯어간 업무 중 하나다). 페라리, 포르쉐, 아우디, 미니, 르노, 쉐보레, 재규어/랜드로버가 그들의 대표 모델로 서킷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이벤트다. 프로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슈퍼카와 레이싱카에 동승할 수 있고, 직접 고성능 스포츠카를 타고 서킷을 질주할 수 있다. 반백 년이 넘은 클래식카를 타고 내린천 주변을 달리며 가을의 정취와 풍광을 만끽할 수 있으며, 전문 인스트럭터에게 스포츠 주행과 안전운전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벤트의 주된 목적이 ‘경험’이다. 우리들은 독자들을 대신해 차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문자와 이미지 혹은 영상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판매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우리가 만든 콘텐츠로 간접 경험한다. 경험이 얼마큼 심도 있고 생생하게 전달되는지에 따라 독자들은 그 경험을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구매한 경험이 만족스러울 때는 <모터 트렌드>를 다시 찾을 것이고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등을 돌린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이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쉽고 편하게 읽힐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예쁘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며, 어떻게든 멋있게 포장하기 위해 영상을 찍고 그럴듯한 음악을 입혀 시장에 내놓는다.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우리가 생산한 콘텐츠를 구매하면서 자동차를 간접 경험했다. 그 덕분에 <모터 트렌드>가 13년 동안 꾸준하게 책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경험은 직접이 아닌 간접이다. 우리가 아무리 글을 잘 쓰고 사진과 영상을 멋지게 찍어도 직접 보고 타고 만지는 것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모터 트렌드>는 우리의 직접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고 13주년을 기념해 ‘모터 트렌드×카카오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기획했다.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니(참가는 유료) 많은 이가 경험하기 바란다. 그 경험치가 <모터 트렌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그나저나 내 머리가 참담한 잔해가 되기 전에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익스피리언스 데이가 끝나면 머리가 다시 풍성해질까? 그런데 또 하나 큰 프로젝트가 있다. <모터 트렌드>는 자동차 미디어 최초로 모 섬에서 화보와 영상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래도 탈모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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