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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Aug 23. 2018

#3.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미디어 권력이 SNS를 통해 이동하고 때로는 역전되는 현상을 보고 있다

얼마 전 후배가 찾아왔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 적 없는 업계 후배지만, 몇 년 전 일본으로 출장을 같이 가면서 알게 된 사이다. 며칠 전까지 일했던 남성지를 퇴사해 직장을 옮기게 됐다며 인사차 들렀다. 그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둘 다 몸담은 바닥이 잡지 쪽이라 대화 대부분은 현재 잡지 시장의 방향과 흐름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어둡고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의 득세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으로 생각했다. 또 이런 변화에 따라 잡지사들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현재 미디어 시장은 자동차 시장만큼이나 복잡하다.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 여기에 전동 킥보드와 같은 도심형 1인승 모빌리티가 혼재한 것처럼, 미디어 시장도 다양한 미디어 채널이 생성되고 있다. 그중에서 전통적인 지면(종이) 시장은 대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매체가 모두 잘 먹고 잘사는 건 아니다. 홈페이지를 비롯해 포털사이트와 유튜브, SNS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이를 명확하게 수치화하는 미디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조금이나마 빛을 발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예전엔 그들의 홈페이지에만 기사를 올렸다면 지금은 홈페이지를 비롯한 여러 포털사이트에도 기사를 함께 올려야 한다. 그 기사를 홍보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병행해야 하고 인스타그램용으로 기사를 재가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기사를 보게 될 것이고, 그 숫자가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시장은 또 다른 형태의 미디어를 파생하고 있다. 유튜버와 인플루언서 등이다. 이들이 미디어로서의 역량과 역할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독자 수와 좋아요 숫자다. 명확한 숫자가 상업적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고 광고주들은 이 숫자에 따라 광고 가치를 결정한다.  

후배는 내게 책을 한 권 주고 갔다. 그가 앞으로 일하게 될 독립 잡지다. 이 잡지는 전통적인 잡지의 구조와 형식을 파괴했다. 잡지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가 하나도 없다. 수익은 대부분 책 판매에 의존한다. 그래서 책이 비싸다(1만8000원). 기존 잡지사들이 수많은 브랜드의 소식과 정보를 전달했다면, 이 잡지는 매달 하나의 브랜드만을 깊이 탐구한다. 이 독립 잡지의 가장 큰 가치이자 특징이 여기에 있다. 저변 확대가 아닌 선택과 집중이다. ‘좀 더 심층적인 정보를 원하는 이들에게만 책을 팔겠다’는 의지가 첫 페이지부터 또렷하다. 대신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의 대가는 소비자가 지불해야 한다.

후배가 준 독립 잡지의 이달 브랜드는 인스타그램이다. 책은 인스타그램이 이 시대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부터 탐구하기 시작한다. #metoo 해시태그 하나가 인권에 대한 인류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 정치계와 문화계가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큰 변동을 일으켰고, 그렇게 세계인은 자의든 타의든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singaporesummit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지구인들의 관심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해시태그가 사회, 문화,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문이 아니다. 세세한 설명도 필요 없다. 단지 단어 하나다. 하나의 해시태그에 수십만, 수백만 명의 국경 없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살을 보태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진리와 가치, 의식이 된다. 그렇게 하나의 문화 또는 디지털 문명이 된다. 

인스타그램 브랜드 자체로서의 영향력도 거대하지만 수많은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어서들의 영향력도 크다. 요즘 내 관심사 중 가장 큰 부분이 인스타그램이다. 미디어 권력이 SNS를 통해 이동하고 배분되며 때로는 역전되는 현상을 여러 인플루언서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 알지? 왜 TV에 몇 번 나왔잖아. 이 사람이 자기 인스타그램에 제품 한 번 올려주고 받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 500만원이야.” 며칠 전, 방송과 SNS에서 라이프스타일 에디터로 활동하는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사진 하나에 글 몇 줄이다. 사진에 공을 들인 것도 아니고 작문 실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제품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 하나 올리는 데 500만원을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아니다. 그저 방송인과 인맥이 닿아서 방송에 몇 번 나왔고 좋은 이미지를 보이며 순식간에 인플루언서가 됐다. 그리고 그는 각종 행사에 초대받고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수익을 낸다. 

개인 인플루언서들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빠르게 정착한 잡지사들은 이미 수익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서 나온다. 인플루언서들과 마찬가지로 팔로워를 늘리고 매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미지나 영상을 노출해주는 대가다. 

예전 미디어 구조는 독자들이 기사를 찾아다녔다. 신문을 받아보고 잡지를 구매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가 독자를 찾아다니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와 SNS, 유튜브 등 모든 디지털 채널을 동원한다. 그래야 더 많은 광고주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미디어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력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조사의 마케팅 비용이 그쪽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독립 잡지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플랫폼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잡지의 형식과 구조, 생리를 타파하며 독립의 기치를 내걸었다. 반면 디지털 플랫폼은 여러 미디어 형태를 끌어들이며 미디어 생태 변화를 이끌었다. 독립 잡지와 디지털은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모터 트렌드>도 광고주로부터 독립을 외치거나 아니면 디지털 시대의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했고 그에 따라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미 회사 경영진은 디지털 콘텐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광고주와 함께 가겠다는 의미다. 그러자면 필연적으로 <모터 트렌드>가 인플루언서가 돼야 한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8000여 명인데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도대체 팔로워가 얼마나 돼야 인플루언서가 될까? 팔로워가 고작 180명인 난 잘 모른다. 그런데 편집장이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별거 아냐! 넌 <모터 트렌드> 편집장이잖아. 차 사진 몇 장 올리고 멋진 멘트나 의견을 올리면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어. 물론 그걸 자주 해야지.” 팔로워가 수만 명에 달하는 선배의 조언이다. 인플루언서의 조언대로 하면 나(@jinwoo2)도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만드는 <모터 트렌드>(@motortrendkr)도 자동차 전문 매거진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아~ 편집장으로서의 업무가 또 하나 늘었다.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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