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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Aug 23. 2018

#2. 뜨거운 밤 잠은 안 오고

이 책은 일종의 ‘경험 자극 동기부여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숙면하지 못했다. 잠들기 어려웠고 잠들어도 내가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긴가민가한 가수면 상태였다. 예삿일이다. 고질적인 불면증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다. 침대에 누워 잠이 올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린다. 가끔은 숫자를 거꾸로 세어 보기도 하고, 수면을 유도하는 호흡도 한다(4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7초 동안 숨을 멈추고 8초에 걸쳐 천천히 숨을 내쉰다). 인터넷엔 이런 들숨과 날숨으로 2분 만에 잠에 빠져들었다는 내용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시간과 숫자를 헤아리느라 신경만 더 쓰일 뿐이다. 

잠을 자기 위한 노력은 밤에만 그치지 않는다. 낮에는 커피를 포함해 녹차, 초콜릿 등 카페인이 조금이라도 함유된 것은 입에 넣지 않는다. 선천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몸뚱이는 알코올과 니코틴은 아무 거리낌 없이 흡수하면서 유독 카페인엔 민감하다. 카페인을 조금이라도 섭취한 날이면 여지없이 잠을 못 잔다. 혹여 카페인을 몸에 많이 넣으면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하고 왼쪽 팔뚝부터 중지 끝까지 미세하게 떨리기도 한다. 콜라는 안 먹은 지 몇 년 됐고 카페인 함유량이 많은 에너지 드링크는 무슨 맛인지 모른다. 

햇빛도 중요하다. 하루 중 볕을 쬐는 시간이 많은 날에 잠을 더 잘 잔다는 걸 내 몸을 활용한 수년간의 임상시험으로 밝혀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피부가 약하다. 햇볕을 조금만 쬐도 피부가 따끔거린다. 4년 전 괌에서 약간의 태닝을 했는데 등껍질이 허옇게 벗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햇볕을 쬐는 대신 비타민 D를 복용한다. 그런데 내 몸 임상시험 결과는 약으로는 수면 유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돈만 낭비했다.

운동도 한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양재천에서 걷고 뛰는 게 전부다. 몸뚱이를 혹사해 잠이 아닌 기절이나 실신을 노리는 것이다. 이건 효과가 반반이다. 적당한 운동은 수면에 확실히 도움을 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과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선다. 이 상태는 정말 낭패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이렇게 운동이라도 하면 잠을 잘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 다행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은 장마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또 비가 안 오면 미세먼지가 득세하니 나가기가 꺼려진다. 비 아니면 미세먼지니, 대한민국은 참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더 못 잘 거 같다.

이것저것 다 해도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통 낮 동안 예민한 상태로 일을 했거나 다음 날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가 그렇다.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면 새벽 3~4시가 된다. 그러면 빨리 자야겠다는 강박에 휘몰리게 되고. 그렇게 하얀 밤을 보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땐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쓰기도 한다. 바로 수면제다. 집에는 늘 의사에게 처방받은 졸피뎀이 있다. 출장 갈 때도 가지고 간다(불면증 환자는 시차 적응도 잘 못 한다). 좁쌀만 한 것 한 알만 먹으면 20분 안에 아주 깊은 수면에 빠진다. 다만 이 방법은 취침이나 수면이라기보다는 졸도에 가깝다. 숨 쉬는 것만 잊지 않을 정도로 아주 깊고 어두운 수면(꿈도 꾸지 않는다)에 빠져들지만 일어나면 머리가 약간 무겁고 몽롱하다. 그래도 한숨도 안 잔 것보다는 낫다. 

지난 한 달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열기(熱氣)다.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 이어지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숨구멍을 옥죄었다. 여기에 월드컵 열기까지 더해져 몹시도 뜨거운 한 달이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치맥과 함께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에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아직 한여름 밤의 열기는 그대로 남았다. 지금도 더운데 문제는 이제부터 여름의 절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아스팔트가 이글이글 끓어오르며 시민들의 정신을 아연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올해 대구는 섭씨 40도를 찍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벌써 잠들기 힘들 것 같다. 

수십 년간 불면증에 시달리던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잠이 안 올 때 잠들기 위해 노력하면 잠이 더 안 온다. 이때는 잠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것’을 해야 청개구리 같은 몸이 잠을 원하게 된다. 당신의 ‘다른 밤’을 위해 이달 <모터 트렌드>는 한여름 밤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다른 것’을 준비했다. 김선관과 뉴페이스 박호준이 밤잠을 설치며 이 시대의 건전한(!) 밤 문화를 밤새 찾아다녔다. 

한여름 밤의 한강은 낮보다 활기차다. 열기를 피해 물가로 모인 시민들은 따릉이(서울시 공공 자전거)를 타며 강바람을 맞거나 뜀박질로 땀을 뺀다. 반포 밤도깨비 야시장은 맛의 별천지(밤엔 뭘 먹어도 맛있다)다. 사이키 조명 휘황찬란한 세차장은 이제 하나의 밤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 핫 플레이스가 된 해방촌의 바와 카페, 레이싱 게임방, 심야 극장은 열기를 피하기 위한 밤손님으로 북적인다. 밤이어서 즐거운 서울의 밤이다. 자!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밖으로 나가자. 

밖에 나가는 게 싫다고? <모터 트렌드>엔 당신의 여름밤을 위한 기사가 넘쳐난다. 당신의 섹시한 밤을 위한 트로피컬 컬러의 칵테일이 준비돼 있고, 당신이 꿈꾸는 세컨드카 라이프를 여덟 명의 몽상가들이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더불어 저 멀리 모나코와 독일까지 날아가 새 차를 탐닉하고, 미래 우리 삶을 편안케 할 신기술을 공부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차와 그에 관한 이야기가 농밀하게 담겨 있다. <모터 트렌드>는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적절하고 완벽한 대안이 될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모터 트렌드>를 당신의 졸피뎀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 책은 잠을 유도하는 무거운 내용의 인문학 서적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는 자동차 산업기능사 참고서도 아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자동차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타고 싶고, 하고 싶고, 사고 싶게 만드는 일종의 ‘경험 자극 동기부여서’라고 할 수 있다. 어렵다고? 쉽게 말하자면 졸리기는커녕 오히려 잠을 잊게 만드는 잡지다. 그러니 넋 놓고 읽다 보면 밤의 끝을 보게 될 테니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모터 트렌드>는 당신의 밤과 수면까지 살뜰하게 챙기고 신경 쓴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당신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기 바란다. 우리의 낮이 어떠냐고?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차를 올리고 땡볕에 조명까지 켜고 몇 시간씩 촬영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몸을 홀딱 적셔가며 일했다. 이렇게 <모터 트렌드> 8월호가 만들어졌다. 바로 당신을 위해.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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