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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l 31. 2019

#10. 좋은 차 나쁜 차

“비싼 차가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차가 비싼 거 아니에요?”

2010년 4월, 현대 아반떼 XD를 떠나보내고 지금의 차를 샀다. 당시 아반떼를 10년이나 탔지만 주행거리가 10만km가 되지 않아 엔진은 쌩쌩했다. 하지만 사고 후유증이 꽤 심했었다. 사거리에서 차체 오른쪽을 대차게 받히며 차체가 인도로 튕겨져 올라갔다. 사고 후 차체는 처참했다. 네 바퀴를 곱게 접고 오른쪽 문이 조수석 절반을 밀고 들어왔다. 보험사 직원은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게 다행이네요. 누군가 있었다면 끔찍했겠어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고객님은 괜찮으세요?” 신기했다. 차체가 이렇게 엉망이 됐는데도 난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정신도 말짱했고 사고 순간도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이 차는 폐차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고친다고 해도 돈도 많이 들고 차도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공업사 매니저는 폐차가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하지만 난 내 차를 살리고 싶었다. 그동안 애지중지해왔던 차가 사고 순간 날 살린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폐차장에서 똑같은 차를 찾아 차체를 정확히 반으로 잘라 내 차에 붙였다. 내장재와 서스펜션 등도 모두 폐차의 것을 가져다 썼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당시 아반떼의 보험수가가 300만원 정도였는데, 수리비가 350만원이 나왔다. 즉 이 차는 폐차하는 게 이득이었던 거다. 섀시와 보디까지 정확히 반으로 잘라 붙여 다시 만든 차가 성할 리 없었다. 시속 100km가 넘으면 ‘이러다 반으로 쪼개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고도 그 차를 3년 가까이 탔다. 사고 싶은 차를 살 수 있을 때까지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아반떼가 10년째 되는 해에 드디어 차를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폭스바겐 매장으로 달려갔다. 6세대 골프 GTD를 일시불로 구매했다. 그리고 아반떼와 작별했다. 당시 자동차 평가사는 아반떼 보닛을 열어보고 한마디 했다. “어휴, 크게 다치셨겠어요?” 그는 보닛만 열어보고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단박에 알아차렸고 그 자리에서 중고차값을 110만원이나 깎았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했다. “사고가 커서 국내에는 못 팔고 제3세계로 보내야합니다.” 그렇게 나의 20대를 함께한 아반떼가 이름 모를 국가로 팔려갔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랫말처럼 아반떼와의 이별의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차는 아반떼에 없었던 운전 재미가 듬뿍 담겨있었다. 경기도 군포에서 서울 장충동, 청담동, 대치동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지리멸렬하게 길기는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운전을 즐기기도 했다. 연비도 좋으니 기름값 부담도 적어 전국 방방곡곡 헤집고 다녔다. GTD는 어느새 내 삶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차에 변심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디젤 게이트다. 폭스바겐은 EA189 디젤 엔진의 프로그램을 고의적으로 조작해 배출가스가 덜 나오는 것처럼 속였다. 실제로는 기준치의 최대 40배에 이르는 배출가스를 내뿜으면서 말이다. EA189는 내 차에 들어가는 바로 그 엔진이다. 나도 모르게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기준치 이상으로 내뿜으며 세상을 더럽히고 있었다. 내 차를 타는데 세상에 미안했다. 그래서 자동차 운행 시간이 줄었다. 

자동차 전문지 기자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요즘 어떤 차가 좋아요?” 너무 광범위한 내용이라 “대략적인 차값이나 활용도를 알려주면 추천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마디 오가면 추천하는 이나 받는 이 모두 싫지 않은 결론이 나곤 한다. 그런데 무턱대고 “그냥 요즘 괜찮은 차 알려줘요”라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매뉴얼도 있다. “비싼 차가 좋은 차죠”라고 한다. ‘네가 생각하는 차 중에서 비싼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뒤통수를 대차게 얻어맞은 것 같은 되치기를 받은 적이 있다. “비싼 차가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차가 비싼 거 아니에요?” 

‘비싼 차가 좋은가? 좋은 차가 비싼가?’ GTD에 비해 차값이 4분의 1밖에 안 된 아반떼는 내게 좋은 차였다. 수동이라 불편했고 연비 좋다는 린번 엔진은 그냥 출력만 낮고 연비는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이 차는 내 젊은 시절을 함께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줬고, 그 기억들이 그 차를 되살리게 했다. 반면 GTD는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GTD는 한때 내 삶의 활력소였다. 차를 타는 게 즐겁고 유쾌했으니 그때만큼은 좋은 차가 분명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차는 내게 더 이상 좋은 차가 아니게 됐다.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잘 달리지만, 차를 탈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편치 않다. 지난 9년간 잔고장도 많아 엔간히 속을 썩였다. 결과적으로 아반떼보다 4배나 비쌌지만 좋은 차는 아니었으니 ‘비싼 차가 좋은 차’라는 내 논리는 틀렸다. 

<모터트렌드>는 이달에도 좋다는 차를 많이 탔다. 그 가격이 얼마인지 모를 만큼 높은 롤스로이스 컬리넌, 한국차 중 가장 크고 비싼 제네시스 G90, 렉서스의 기함 LS 500h, 국산 SUV 중 가장 큰 팰리세이드, 푸조와 DS의 새로운 기함 508과 DS7 등 각 브랜드에서 가장 크고 비싼 차들이 페이지에 빼곡하다. 그런데 이 차들은 과연 어떨까? 비싸니까 좋은 차일까? 아니면 좋아서 비싼 것일까? 물론 소비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오는 2월 말, 회사가 이전한다. 출퇴근 시간이 15분에서 60분으로 늘어나게 되니 지금 타는 차는 마음을 더 무겁게 할 것이다. 그래서 올해 안에 차를 바꿀 생각이다. 어떤 차가 내게 좋을지 심사숙고 중이다.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에 오른 제네시스 G70를 <모터트렌드> 편집장이 타는 것도 괜찮을 거 같고, 내가 마치 운전을 잘하는 것처럼 포장해주는 현대 벨로스터 N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조만간 새 모델이 나오는 BMW 3시리즈도 갖고 싶은 차 중의 하나다. 마음에 드는 차들이 많아 결정의 시간이 짧지 않겠지만,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이 오면 <모터트렌드> 편집장의 새차를 공개할 예정이다. 부디 그 차가 나와 이별할 때까지 좋은 차로 남았으면 한다. 더불어 독자와 소비자들이 좋은 차를 고르는 데도 <모터트렌드>가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모터트렌드>의 존재 가치가 바로 길라잡이 역할이니까.

편집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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