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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l 31. 2019

#11. 포뮬러 E와 서울 그리고 현대차

난 누구보다 포뮬러 E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를 희망한다

모터스포츠를 좋아한 지 꽤 오래됐다. 자동차 전문기자이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혁신적인 자동차 기술이 모터스포츠에서 생성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상에서 펼쳐지는 모든 스포츠 가운데 가장 빠른 스포츠기 때문이다. 특히 F1을 좋아했다. F1 경주차가 가장 빠른 이유도 있지만, 그나마 다른 모터스포츠에 비해 접하기 쉬웠다. 10여 년 전엔 TV에서 F1을 볼 수 없었다. 방송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승 경주가 열린 다음 날(월요일)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내려받아서 봤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다. 영상 하나를 다운로드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WRC와 WEC는 경주에 대해 잘 몰랐고 인터넷에서 찾기도 힘들었다. 

2010년, F1이 전남 영암에서 열렸을 때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직접 볼 수 있게 됐으니까. 어둠의 루트를 통해 60만원짜리 티켓을 15만원에 샀다. 전남이 코리아 그랑프리가 흥행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경주장 인근 주민에게 티켓을 공짜로 배포한 것이다. 내게 티켓을 판 농민은 공돈이 생겨서 좋았을 것이고 난 티켓을 싸게 사서 좋았다. 당시 이걸 기사로 써볼까 했지만, 굳이 내가 쓰지 않더라도 ‘국민 세금이 자동차 경주장 설립과 경주 유치에 들어가는 게 옳은가?’ ‘수익성은 있는가?’ 등 네거티브 기사가 넘쳐났다. 이후 코리아 GP는 세 번 더 열리고 끝났다. 원래는 7년 계약이었지만 누적되는 적자(경주장 건립 및 운용과 유치비용 등)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F1 팬으로서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객관적인 입장으로 보더라도 코리아 GP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경주를 계속하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한데 전라남도엔 그게 없었다. 우선 한국에 F1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당연히 국민적 성원은 고사하고 흥행도 힘들다. 외국 팬이 많이 찾을 거라고 했지만, 4년 내내 코리아 GP에 갔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한국을 홍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싱가포르처럼 도심에서 경주가 열리는 것도 아니고,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야스마리나 서킷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서킷도 아니었다. 논과 밭 그리고 바다뿐인 경주장 주변은 세계 최고의 통신 및 전자기술을 지닌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지난해 말 포뮬러 E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무척 기뻤다. 포뮬러 E는 F1 다음으로 즐겨 보는 모터스포츠이기 때문이다. 2017년엔 ‘서울에서 포뮬러 E가 열린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적당한 위치와 기대 효과, 필요한 행정절차 등에 관해 몇몇 전문가와 함께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코리아 GP의 결말을 봤으니까.

그런데 어쩌면 포뮬러 E 서울은 시작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중요한 행정적 절차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전남은 코리아 GP 개최를 위해 가장 먼저 정치계를 움직였다. 지역구 의원이 국회 문화관광위에 F1 특별 법안을 제정해 통과시켰고, 그렇게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더해져 경주 개최에 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포뮬러 E는 경주가 개최되는 도시인 서울시가 경주에 대해 모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터스포츠는 돈이 많이 든다. 포뮬러 E는 경주장 건설비가 필요 없지만 경주를 위한 최소 환경을 갖추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개최권료를 내야 하고 일반도로를 경주장화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또 각 경주팀의 수송과 물류의 일정 비용도 개최 도시에서 부담해야 한다. 내년에 광화문에서 포뮬러 E가 열리기 위해선 이미 서울시는 이에 대한 예산을 책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세금을 특별비로 빼서 경주 개최비로 사용하려면 서울시의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의회가 이를 쉽게 허락할까? 세금을 안 쓰는 방법도 있다. 스폰서십이다. 개최에 필요한 비용을 여러 회사로부터 광고비로 충당하면 된다. 하지만 경주가 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회사가 광고하겠다며 돈을 들고 올까? 

지금 상황으로 보건대 포뮬러 E 서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은 코리아 GP의 전철를 밟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도 부담이다. 큰돈을 들여 광화문광장을 막고 경주했는데, 흥행에 실패하고 시민들 불편만 가중했다면 차기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경주를 1년만 하고 물리기도 힘들다. 경주가 실패라는 걸 자인하는 꼴이기도 하거니와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이 발생한다. 

난 누구보다 포뮬러 E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를 희망한다. 많은 이와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뮬러 E 서울에 관한 기사도 썼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내년에 광화문에서 포뮬러 E를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사실 포뮬러 E는 F1보다 개최가 어려울지 모른다. F1은 경주장이 있으면 열 수 있지만 포뮬러 E는 일반도로를 경주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행정적인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적 지원이 수반돼야 하고 대형 스폰서가 붙어야 좀 더 수월하게 개최를 진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포뮬러 E 경주가 열리는 가장 쉬운 시나리오를 생각해봤다. 현대차가 포뮬러 E에 참가하는 것이다. 2023년에 완공되는 삼성동 현대차 사옥 앞 영동대로는 서울에서 가장 넓은 도로 중 하나다. 주변에 대형 호텔이 많고 대형 쇼핑몰(코엑스)도 있다. 한류의 중심인 K팝 스퀘어가 있고, 한국에서 가장 큰 디지털 광고판도 여러 개 있다. 모든 게 완벽하다. 생각해보자. 현대차는 그들의 경주차가 한국에서 가장 큰 현대차 빌딩 앞에서 경주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현대차 광고 및 홍보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3월호 모터스포츠 특집을 맞아 모터스포츠 팬이자 자동차 저널리스트로서 포뮬러 E 서울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 끝이 현대차까지 간 걸 보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문화가 현대차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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