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Jul 31. 2019

#12. 난 믿지 못하겠다

중요한 것은 개인 또는 단체의 영리와 영달을 위해 거짓을 조장했다는 거다

며칠 뒤면 국내 최대 자동차 박람회인 서울모터쇼가 시작된다. 2년에 한 번 있는 이 모터쇼를 기자를 하면서 8번 맞게 됐다. 내가 취재차 서울모터쇼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모터쇼가 열렸다. 국제 모터쇼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규모도 작고 전시되는 차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모터쇼가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으로 옮겨가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차도 많고 관람객도 많았다. 조직위는 서울모터쇼가 열릴 때마다 100만 명 내외의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파리 모터쇼에 뒤지지 않는 관람객 수가 아닐 수 없었다. 인구 대비 모터쇼 방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정말 많다는 것도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이었다. 지난 2015년 서울모터쇼 조직위는 그동안 관람객 수를 부풀렸다고 시인했다. 실제로는 60만 명 정도인데 국제모터쇼 위상을 위해 100만 명으로 뻥튀기했다는 거다. 서울모터쇼뿐 아니다. 부산모터쇼도 마찬가지였다. 15년 동안 관람객 수를 속였다. 

관람객 수를 부풀린 이유에 대해 모터쇼 관계자는 “관람객이 많이 온다고 해야 전시 업체가 더 많아지고 지자체를 비롯해 국토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과기부 등의 국가기관과 정부조직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선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 때문에 관람객 수를 15년간 속이면서 모터쇼를 지속해온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서울모터쇼 조직위의 주축이 된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자동차 제조사를 비롯해 부품 및 용품 업체에게 사기를 친 셈이고, 부풀린 관람객 수를 정부조직에 내밀고 지원금(세금)을 따낸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런 조치 없이 서울모터쇼는 계속되고 조직위도 큰 변화는 없다. 올해도 모터쇼가 끝나면 조직위는 총 관람객 수를 발표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난 믿지 못하겠다.

거짓은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자행된다. 지난 2014년 3월, 현대차는 LF 쏘나타를 출시하면서 “쏘나타로 택시를 만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차가 택시로 사용되면서 가치가 하락해 소비자들이 차를 사지 않을 것을 염려한 조치였다. 그런데 그해 9월 가스통을 단 LF 쏘나타 택시가 나왔다. 판매량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자 곧바로 택시 전용 모델을 만든 것이다. 차를 출시할 때 택시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던 게 진실이었더라도, 결과적으로 현대차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현대차 말을 믿고 자신의 차가 택시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차를 산 사람들은 적잖은 배신감과 허탈감을 맛봤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를 출시하면서 또 “택시 모델을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택시 수요는 LF 쏘나타를 계속 생산해 충당하고 8세대 쏘나타는 승용 전용 모델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기시감이 든다. 한 번 속은 소비자들이 이 말을 믿을지 의문이다. 

거짓이 충격과 공포로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때는 2013년 1월이다.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단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못했던 차를 만났다. 어울림모터스에서 만든 뱅가리라는 세단이었다. 차체 길이가 5560mm로 당시 롤스로이스 고스트보다 길었다. 차체 길이야 그렇다고 쳐도 휠베이스가 무려 4m에 달했다. 이런 초대형 세단이 엔진을 미드십에 얹었다. 난 태어나서 여태껏 뱅가리를 제외하고 차체 길이가 5m가 넘는 미드십 세단을 본 적이 없다. 

이 차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은 4도어 세단을 미드십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세단은 편하고 안락한 게 우선인데, 엔진과 변속기가 뒤에 있으면 뒤 승객이 불편하다. 공간 효율성도 떨어진다. 짐공간도 없다. 앞 후드 아래는 냉각용 팬이 있고 뒤에는 엔진이 있다. 차체 높이(1340mm)가 낮아 승하차도 힘들고 헤드룸도 좁았다. 뒷문도 말이 안 됐다. 도어 손잡이가 거꾸로 달려 있었다. 문을 열기 위해선 손잡이를 내 쪽으로 당기는 게 아니라 앞쪽으로 밀어야 했다. 그 이유는 앞 도어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운전석 도어를 돌려 오른쪽 뒤에 달고 조수석 것을 왼쪽 뒤에 달았다. 그래서 롤스로이스와 같은 수어사이드 도어가 됐다. 

왜 이런 차를 만들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어서 어울림모터스에 직접 찾아갔다. 당시 어울림모터스 사장, 어울림 그룹 사장과 인터뷰를 했지만 뱅가리는 무엇 하나 명쾌하지 않았다. “국내에선 인증을 받을 수 없어 유럽에서 판매할 것”이라 했고, 몇 달 안에 FR 스포츠카를 만들 것이라 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뱅가리는 지구 어디에도 굴러다니지 않고 어울림모터스는 뱅가리 이후 그 어떤 차도 만들지 않았다. 

뱅가리는 생산을 염두에 둔 자동차가 아니다. 자동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이 차는 절대 생산할 수도, 생산해서도 안 되는 차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럼에도 어울림이 뱅가리를 만들어 서울에서 가장 큰 전시장에서 발표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테고, 그 누군가는 바로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 또는 조직이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자동차 바닥에는 여러 거짓이 존재한다. ‘거짓 뉴스’도 그중의 하나다. 누군가를 속여 영리적 목적을 취하는 행위가 거짓이다. 이익을 냈는지 내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인 또는 단체의 영리와 영달을 위해 거짓을 조장했다는 거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거물 정치인과 법조인, 연예인, 언론인의 성접대 의혹과 성폭행. 그 속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난잡한 짓거리와 치졸한 행위들을 거짓으로 덮으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모든 범죄 사실이 성역 없이 명명백백 밝혀지기 바라다.

아 참! 이달 <모터트렌드>는 거짓말을 몇 개 하려고 한다. 제목은 ‘FAKE NEWS’지만 거짓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희망’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읽어보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부디 오는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닌 이 나라와 더불어 모든 국민에게 희망찬 달이 되기 바란다. 이건 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하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포뮬러 E와 서울 그리고 현대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