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Jul 31. 2019

#13. 고인 물은 썩는다

예나 지금이나 잡지사의 근간이자 핵심은 콘텐츠다

올해도 서울모터쇼에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조직위에 따르면 열흘간 63만 명이 서울모터쇼를 찾았다고 한다. 2년 전보다 전시된 차의 수는 적지만 관람객은 더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서울모터쇼를 찾은 이유는 그 안에 자동차와 관련된 많은 콘텐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국 모터쇼답게 가장 큰 부스를 자랑한 현대, 기아, 제네시스는 그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서울모터쇼를 가장 빛나게 했다. 쉽게 볼 수 없는 WRC 경주차를 가져다 놓고 다양한 친환경 자동차와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끔 했다. 제네시스의 화려한 전시공간에서는 관람객들이 셀피를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차를 2층에 전시한 BMW, 부스 전면을 화려한 LED 모터로 감싼 메르세데스 벤츠, 차세대 무인 전기차를 앞세운 르노와 출시할 새차를 전시한 한국지엠 등 보고 즐길 거리가 많은 모터쇼였다. 서울모터쇼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원동력은 모터쇼에 부스를 차리고 관람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콘텐츠를 준비한 자동차 브랜드와 부품 및 용품사 덕분이다. 

아울러 <모터트렌드>도 서울모터쇼에 부스를 세웠다(서울모터쇼에 부스를 차린 자동차 미디어는 <모터트렌드>가 유일했다). 부스 크기가 자동차 제조사들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여러 직원이 오랜 시간 준비한 이벤트로 관람객을 맞았다. 다행인 것은 많은 이들이 <모터트렌드> 부스를 찾았다는 것이다. 막상 모터쇼를 준비한 입장에선 뭐 별거 아닌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관람객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 보다. 자동차가 좋아 모터쇼를 찾은 관람객들은 이벤트의 크고 작음을 떠나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 자체가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준비한 다양한 콘텐츠 덕분에 이번 서울모터쇼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서울모터쇼가 끝나기 전, 미국 새크라멘트로 출장을 갔다. 지프의 새로운 픽업트럭 글래디에이터를 시승하기 위해서였다. 랭글러를 베이스로 한 이 트럭은 놀라울 만큼 오프로드를 잘 달렸다. 당연하다. 이 차는 지구에서 오프로드를 가장 잘 달리는 차를 베이스로 했으니까. 그리고 이 차는 랭글러보다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럭이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차체 변형에 따른 활용도 변화가 내가 느낀 글래디에이터의 가장 큰 특징일 뿐이었다. 차는 좋았지만 무언가 핵심 콘텐츠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새크라멘토에서 글래디에이터를 시승하고 5시간을 날아 디트로이트 FCA 테크놀로지 센터로 갔다. 지프의 새로운 콘셉트카를 보기 위해서라는 내용만 전달받은 상태였고, 그 차들은 이제껏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비루한 몸뚱이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달라지는 시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무거웠다.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고, 저녁도 먹지 못해 가지고 간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눈 감기 무섭게 일어나야 했고 그렇게 FCA 테크놀로지 센터에 닿았다. 

FCA 그룹의 중요 기술 자산이 개발되는 테크놀로지 센터의 가장 안쪽 은밀한 곳에 여섯 대의 글래디에이터 콘셉트카가 있었다. 내 몸뚱이보다 더 무거 운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글래디에이터를 ‘그저 오프로드를 잘 달리는 트럭’정도로만 생각했던 내게 지프는 이 차의 다양한 활용성이라는 핵심 콘텐츠를 극적으로 선보였다. 여섯 대의 차는 하나같이 알차고 특별한 콘셉트가 있었고, 각 차마다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스토리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FCA는 실리도 놓치지 않았다. 여섯 대의 콘셉트카는 모두 FCA의 튜닝 및 용품 브랜드 모파의 파트로 튜닝된 상태였다. 모파를 통하면 콘셉트카와 똑같이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홍보한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훌륭한 콘텐츠인가.

글래디에이터를 시승하고 나서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난 지프가 준비한 드라마틱한 반전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특히 여섯 대의 콘셉트카 중 캠핑을 테마로 한 웨이아웃 콘셉트를 보며 내 마음은 이미 이 차로 한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콘셉트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글래디에이터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지프가 준비한 킬링 콘텐츠가 바로 이것이다. 더불어 글래디에이터가 그저 그런 픽업트럭이 아닌 오너 자신을 잘 표현하는 특별한 차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서울모터쇼는 규모가 작아졌음에도 다양한 콘텐츠로 하여금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였고, 지프는 여섯 개의 콘텐츠를 기획해 그들의 새로운 픽업트럭을 더욱 특별한 차로 만들었다. 이렇듯 참신하면서도 다양한 콘텐츠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잡지사를 생각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잡지사의 근간이자 핵심은 콘텐츠다. 콘텐츠가 많을수록 더 많은 독자를 만나고, 좋은 콘텐츠가 많아야 더 많은 수익 창출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콘텐츠 노출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소비자는 이제 글(文)이 아닌 말(言)을 원하고 사진이 아닌 동영상을 본다.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잡지사들은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다. 

<모터트렌드>도 빠른 건 아니지만 환경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창의적 발상과 그 발상을 글, 사진, 영상 등으로 담아내는 일련의 제작과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건 콘텐츠의 중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시장 변화에 둔감한 채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 이들을 설득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도 콘텐츠 제작자의 몫이라면 몫이다. 하지만 본연의 업무인 콘텐츠 제작에 방해된다면 어떨까? 콘텐츠 제작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지 못했다면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그저 그런 트럭으로 남았을지 모르고, 서울모터쇼는 아예 없어졌을지 모른다. <모터트렌드>도 마찬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난 믿지 못하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