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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l 31. 2019

#14.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합니까?

운전은 싫고 글쓰기는 어렵다. 그걸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시대가 온다

요즘 차를 놓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다. 회사가 강남 대치동에서 종로로 이사하면서 자동차 출퇴근 시간이 5~6배 늘었다. 거리가 3배 정도 길어졌는데 그에 반해 출퇴근 시간이 훨씬 더 는 건 교통체증 때문이다. 

서울 시내 교통체증이 ‘지옥’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 지옥에서 운전하는 건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가다서기를 반복하고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끼어들기에 짜증난다. 안 끼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에 더 짜증나는 경우도 있다. 석 달 동안 여러 퇴근 루트를 헤집고 다녔지만, 도착한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그래서 그냥 경부고속도로를 탄다. 여기도 막히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적 요인이 그나마 적다. 여기서 외부적 요인이란 급작스럽게 옆이나 앞으로 덤벼드는 오토바이(종로엔 오토바이가 많다), 신호 대기 중 우회전 차선으로 주행해 맨 앞으로 들어오는 얌체 택시, 주행에 방해되는 불법 주정차 등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싫어 별일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마을버스를 탄다. 자리에 앉아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지하철로 갈아탄 후엔 자리가 나면 책을 읽는다. 그렇게 역에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회사에 도착한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책과 뉴스도 읽고 덤으로 운동도 한다. 하루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시작한다는 뿌듯함도 있으니 대중교통 이용은 장점이 많다. 

그런데 내가 대중교통을 계속 이용할 수 있을까? 이제 곧 있으면 섭씨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찾아온다. 길거리에 1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할 것이다. 비 오는 날은 어떤가? 습도 높은 버스와 지하철에 탄 모든 이들이 우산을 들고 서로의 몸을 부비적거릴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도 걷고자 하는 의지를 굴복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운전도 싫고 걷는 것도 싫은 나와 같은 인간들을 위한 세상이 오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이다. 우린 이미 자율주행을 부분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고속도로 주행보조와 자동주차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내 차에 앉아 책을 읽어나 유튜브를 시청하고 잠을 자면서 이동하는 시대가 온다. 차가 막혀도 짜증이 덜할 것이다. 어차피 난 운전을 안 하니까. 지금 내 삶을 가장 윤택하게 해줄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의 성대를 화통하게 울리며 ‘자율주행’이라고 외칠 것이다. 

난 지금이라도 운전대를 놓을 준비가 됐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는 아직 요원하다. 특정 상황에서 자동화 시스템에 의한 모든 제어가 가능한 자율주행 4단계가 돼야 인간은 온전히 운전대를 놓을 수 있다. 그런데 업계가 예상하는 자율주행 4단계 완성은 그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자동차 선진국들은 2020~2022년에 자율주행 4단계 기술을 완성한다 하고, 각종 협회 및 연구기관은 2030년은 돼야 온전히 4단계를 실행할 수 있단다. 자동차 브랜드들도 4단계 자율주행 완성이 각각 다르다. 통신사 중에는 이미 준비됐다는 곳도 있다. 내가 언제 운전대를 놓을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원고를 빨리 쓰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느려졌다. 편집장이 되면서 원고량이 줄어서일 수도 있는데, 가장 큰 요인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머릿속에 차곡차곡 분류해 넣어둔 기억을 속속 꺼내 레고 조립하듯 키보드를 누르면 기사가 됐는데, 지금은 기억을 어디에 두었는지부터 생각이 안 난다. 어찌어찌 기억을 찾아내 이를 문자화하는 과정에서도 적절한 단어를 생각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십수 년간 써왔던 글을 더는 잘 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고 안타깝다. 그래서 이 바닥(잡지계)은 나이 들면 글을 많이 안 쓰는 편집장이 되나 보다. 

그런데 나처럼 글쓰기가 어려운 편집장들을 위한 세상이 오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 세상이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인공지능이 얼마나 편하고 똑똑한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삼성 빅스비와 애플 시리는 음성만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고 여러 잡무를 처리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니의 인공지능 시스템 플로머신(FlowMachines)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1만3000여 개의 곡을 분석해 작곡했다. 이 곡은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구글의 머신러닝 소프트웨어 텐서플로(TensorFlow)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 9개 시즌 대본을 모두 학습하고는 다음 에피소드 대본을 썼다. 지난해 KT는 인공지능 소설 공모전을 개최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 역량을 보유한 단체 및 개인의 AI가 로맨스, 판타지 등 모든 장르의 소설을 썼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었던 창작과 예술 활동이 이제 인간의 고유영역이 아니게 된 것이다. 스스로 학습하는(Deep Learning) 컴퓨터는 점점 더 생각과 감정을 더 적절하고 정확한 어휘로 표현하고 묘사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소설과 드라마 대본을 쓰는데 기사를 못 쓸까?’를 생각해본다.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컴퓨터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면 딥 러닝, 머신 러닝, 클라우드 컴퓨팅, 오피니언 마이닝(Opinion Mining) 등의 생소한 기술들이 대신 기사를 써줄 것이다. 지우개보다 빠르게 기억을 지우는 내 두뇌에서 기억을 찾아내 적절한 단어를 골라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컴퓨터가 대신 운전해하 기사까지 써주는 시대라니,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그런데 그런 시대가 오면 세상이 날 필요로 할까? 운전하고 글 쓰는 게 직업인데, 그걸 컴퓨터가 다 한다면 내가 할 일이 없지 않은가? 이미 인공지능은 인류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엔 AI 아나운서가 등장했고, 이스라엘에선 베테랑 변호사보다 AI가 계약서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검토했단다. 미국의 어느 연구소는 미국 내 일자리 4분의 1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류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이야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시대가 빨리 오기를 바라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실업자 신세를 한탄하며 지금이 좋았다고 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인공지능의 접근이 어려운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먹고살기 쉽지 않아 인공지능 시대까지 대비할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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