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Jul 31. 2019

#15. NEWTRO VIBE

말하자면 시간의 불협이 융합을 일으켜 멋이 되고 흥이  되는 게 뉴트로다

지난달 주말 근무 중 맥주가 마시고 싶어(이 건물은 주말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 후배 두 명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부장님, 요즘 핫한 데 가보실래요? 가맥집인데 SNS에서 난리입니다.” “가맥이 뭔데?” “가게에서 파는 맥주요.” “그게 왜 유행인데? 맥주가 맛있어?” “음… 가보시면 압니다.” 

이해 안 가는 게 많았다. 우선 맥주는 원래 가게에서 파는 거다. 그러니 그것은 유행일 리가 없다. 그 가게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슈퍼마켓’을 지칭하는 거라면 슈퍼에서 생맥주를 파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슈퍼 앞에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병맥주를 파는 것인가? 이 또한 특별할 거 없으니 인스타그램에 자랑삼아 올릴 내용도 아니다. 여러 궁금증을 안고 후배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주말 을지로는 평일과 달랐다. 평일 점심 먹으러 가는 을지로는 1980~90년대 상업지구 모습 그대로다. 오토바이가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넘나든다. 머리에 배달용 쟁반을 인 아낙은 수많은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벤치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대낮부터 막걸리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중 한 명은 꼭 태극기를 가슴에 새기고 참전용사 배지가 박힌 군용 모자를 쓰고 있다. 좁은 길은 좌판이 들어서고 세상 잡다한 것들이 판매된다. 지금은 거의 무용지물인 LP나 카세트테이프도 보인다. 야동 CD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말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법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줄어들고 쟁반을 인 아낙도 보이지 않는다. 주중 종로와 을지로를 누비시는 참전용사 어르신들도 주말엔 쉬는 듯하다. 그들 대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재잘재잘 까르르까르르 한다. 그들이 왜 강남역이나 홍대로 가지 않고 이런 낡고 허름한 동네로 오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젊은이들 덕분에 내 생활 터전의 일부가 된 종로가 40년은 젊어진 듯하다. 

후배를 따라 후미진 골목을 배회하기를 한참. 지독한 길치인 나는 이미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부장님 여깁니다.” 앞서가던 김선관이 씩씩하게 뒤돌아보며 말했다. 내 나이보다 오래돼 보이는 간판엔 희미하게 글자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서울식품’ 빨간색 벽돌 건물은 간판보다 오래돼 보인다. 내일 무너져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신단다. 분명 특별한 맛을 내는 맥주나 안주가 제공되기에 많은 사람이 이 좁고 어둡고 찾기 힘든 이곳까지 와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닐까.

건물 외벽으로 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좁은 장소에 젊은 친구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바글바글하다. 그 광경 자체가 이채롭다. 딱 하나 남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켰다. 병맥주다. 안주는 김치전과 짜파게티. 맛있는 맥주도 아니고, 안주도 특별하지 않다. 이걸 먹으려고 사람들이 이 허름한 곳에 대낮부터 모였단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젊은 친구들이 왜 이런 곳으로 모여들까? 가격이 싸서? 싸긴 하다. 맥주 3000원, 소주 2000원, 김치전 4000원이다. 가장 비싼 골뱅이무침이 1만2000원이다. 그렇다고 줄 서서 먹을 정도로 특별한 맛을 내는 건 아니다. 

조심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은 마치 여행지의 한 스폿에 온 것처럼 사진 찍기에 바쁘다. 메뉴판, 식기류, 노란 장판 깔린 바닥, 음식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한 듯 스마트폰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서울식품을 검색해봤다. 충격적이었다. 이곳이 성지라도 된 것처럼 젊은이들이 순례하듯 ‘서울식품’을 인증하고 있다.

사실 젊은이들에게는 종로와 을지로의 골목골목은 새로운 세상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특히 이렇게 좁고 허름한 가게의 낯섦은 2019년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문화적 신선함일 수도 있다. 그들은 종로와 을지로 골목 그리고 가맥집을 구식으로 여기는 나와는 달리, 구식을 구식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문화와 시류로 생각하며 구식을 새롭게 즐기고 있다. 그래서 뉴트로(newtro)라고 부르는 것일 거다. 

이달 <모터트렌드>는 뉴트로 시류에 접근해보기로 했다. 사실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레트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사랑받아온 소재다. 하지만 레트로와 뉴트로는 약간 다르다(고 한다). 레트로는 복고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고, 뉴트로는 복고를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간의 불협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융합을 일으켜 멋이 되고 흥이 되는 게 뉴트로다. 

우리는 레트로 디자인의 차를 섭외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이 서울식품을 찾듯 차세대 연료 시스템을 단 첨단 자동차들을 시간의 흐름이 여실히 느껴지는 배경으로 끌고 갔다. BMW i8 로드스터를 타고 동인천으로 향했고, 재규어 I 페이스는 춘천 육림고개, 볼보 S90 PHEV는 충남 논산 근대문화거리에 등장했다. 최첨단의 향연이라 해도 좋을 테슬라 모델 S는 목포 구도심 전체를 훑고 다녔다. 뉴트로의 성지인 서울 강북도 빼놓을 수 없었다. 현대차, 패션 브랜드 휠라와 함께 뉴트로 콘셉트 화보를 기획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벨로스터 N을 북촌 한옥마을, 해방촌 등 역사의 흔적과 그 흔적 안에 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에서 화보를 찍었다. 

굳이 의미를 두자면, 역사와 시간의 재현이라기보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시간적인 요소들이 기록되고 융합되어 발전해 나가는 하나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였다. 전국을 돌며 촬영한 19페이지의 화보 안엔 과거의 정취와 정서가 있고 첨단을 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도 있으며 미래를 앞당기는 최신 기술도 담겨 있다. 우리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자못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합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