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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l 31. 2019

#16. LAST ACTION HERO

어쩌면 다음 세대는 슈퍼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달은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화끈한 차 두 대를 연이어 탔다. 페라리 포르토피노와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 이름만으로도 뭇 사내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브랜드와 모델이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빠르지만 여느 페라리와는 다르게 운전이 쉽고 편하다. 이 차는 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지금 내가 페라리를 타고 있다’는 우월감이나 성취감이 아니다. 어차피 이 차는 내 차가 아니니까. 차가 주는 좋은 기운이 운전대와 시트를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되는 게 좋다. 더불어 이 차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성능이 마치 운전자의 능력인 것처럼 잘 포장해준다. 

내가 페라리를 처음 대한 건 15년 전이다. 페라리의 전설적인 모델 F40을 국내에서 만났다. 운전은 못 하고 드라이버 옆에 앉았는데, 내가 태어나서 타본 차 중에서 몸이 가장 힘들었다. 변속할 때마다 뇌수가 두개골을 쪼개고 앞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충격을 만들었고, 그 엄청난 충격이 일 때마다 타이어 그립이 달라지며 뒤가 움질거렸다. 그리고 이듬해엔 F50을 타게 됐다. 잠깐 몰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도통 쉽지 않았다. 운전대, 클러치 페달, 기어 등 내가 조작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무거웠고 예민했다. 하지만 두 차를 타면서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내가 타봤던 그 어떤 차보다 빨랐다는 것. F40과 F50은 빠름을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한 차였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도 인상 깊다. 인간의 속도 열망이 얼마나 대단하고, 그 빠름을 실현키 위해 인류가 얼마큼 기술을 발전시켰는지 보여준다. 이 차는 빠르고 정확하게 달리기 위해 차체 아래와 위로 흐르는 바람까지 이용했다. 바람을 차체 안쪽으로 흘려보내 다운포스 양을 조율한다. 2012년 F1 메르세데스 팀이 쓴 F-덕트를 보는 듯하다. 드라이버가 콕핏 안에서 손등으로 바람의 방향을 막아 리어 윙의 다운포스 양을 줄여 더 빨리 가속하는 기술이다. 당시 F1에서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다가 이듬해 금지됐는데, 이와 아주 흡사한 기술을 우라칸 퍼포만테에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운전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가속페달만 밟으면 차가 알아서 다운포스와 드래그 양을 조절한다. 실로 놀라운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람보르기니는 속도에 가장 열정적인 브랜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서킷에서 탔던 가야르도 슈퍼레제라는 정말 무섭게 빠른 차였다. 빠름의 많은 부분이 가벼운 무게에서 왔는데, 이를 위해 오디오까지 없애는 과감함으로 역대 람보르기니 모델 중에서 가장 가벼웠다. 최근 그들이 만든 SUV 우루스는 현재 양산되는 SUV 중에서 가장 빠르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의 가장 빠른 랩타임도 아벤타도르 LP770-4 SVJ(6분 44초)가 가지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이런 브랜드다. 

이달은 두 대의 슈퍼카를 타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마음이 약간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주는 슈퍼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내연기관이 종말을 맞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카 브랜드는 석유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 속도는 그들의 미래이자 사활이었다. 그래서 석유를 더 많이 태워 더 빠르게 달릴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인간은 스피드 열망을 채우고 북돋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에 열광했다. 하지만 종말의 기운은 이미 내연기관 황태자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점점 더 빠듯해지는 각국의 이산화탄소 규제는 슈퍼카 브랜드에게 치명적이다. 기름을 더 태우기 위해 기통을 늘리고 배기량을 키웠는데, 이젠 그걸 할 수 없다. 페라리는 이미 많은 모델에 터보 엔진을 쓴다. 람보르기니가 SUV 우루스를 만든 근본적인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인데, 다른 이유도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V8 4.0ℓ 터보 엔진이 람보르기니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모두 지구 대기 환경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고 안타깝다.

그렇다고 앞으로 슈퍼카 브랜드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엔진이 없어지더라도 인간은 속도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조금도 누그러트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슈퍼카 브랜드는 인간의 이런 내면에 불을 지피면서 그들의 존재를 키워왔고, 엔진이 없는 시대에도 슈퍼카 브랜드는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자극할 빠른 차를 만들기 위한 다른 동력원을 찾을 것이다.

페라리를 동경하고 람보르기니를 사모했던 20대 청년은 지금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타고(물론 내 차는 아니다) 글을 쓴다. 동경과 사모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동경과 사모가 존경으로 바뀌어감을 느낀다. 페라리가 전기차를 만들고 람보르기니가 수소차를 만드는 시대에도 난 계속 두 브랜드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회전과 하늘을 두 쪽 낼 것 같은 배기음을 그리워할 것이다. 

페라리를 동경하고 람보르기니를 사모했던 20대 잡지쟁이는 지금 편집장을 하고 있다. 글자를 판독하고 사진을 감상하는 시대를 지나 짧은 글이나 영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페라리가 전기차를 만들 수밖에 없듯 종이잡지도 영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변혁의 시대다. 십수 년간 잡지만 만들었던 잡지쟁이에겐 쉽지 않은 변화다. 그 변화의 끝엔 엔진이 없어지듯 종이잡지도 없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그러한 시대를 살게 될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만약 그 시대에 놓이면 여전히 전자잡지를 보는 즐거움을 탐닉하겠지만,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넘기며 글자를 판독하던 시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1만rpm 엔진음을 그리워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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