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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Nov 22. 2019

#17. 화가 난다

<모터트렌드>가 일본 라이선스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뜨겁다. 노노재팬 홈페이지를 보면,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 제품을 샅샅이 찾아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우리 국민들의 꼼꼼함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 집단 지성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일본 여행 자제를 촉구하는 방송과 뉴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에 띄고 귀에 들린다. 한 달이 지난 후엔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가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기사도 보인다. 일본 맥주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8.8%나 감소했다 하고, 유니클로 카드 매출은 70%나 줄었단다.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본 제품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제외되면서 발발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봤던 불매운동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끈하며 끈질기고 조직적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의 불매운동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화장품업체 DHC는 말도 안 되는 혐한 방송으로 우리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놨고, 유니클로 일본 본사는 우리의 불매운동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발언으로 온 국민을 불끈하게 했다. 이제 일본 제품 불매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당연히 장착해야 하는 유행이자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불가항력적 명령이 됐다. 어쩌면 이 땅에서 ‘Made in Japan’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편으로는 <모터트렌드>가 일본 라이선스 잡지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우선 일본에 가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 앞으로 계획도 없다. 간간이 마시던 일본 맥주 대신 벨기에와 네덜란드 맥주를 마신다. 자주 가던 유니클로도 가지 않는다. 대신 ‘톱10’이라는 국내 SPA 브랜드를 이용한다. 일본의 경제 제재 전에는 알지 못했던 브랜드다. 매일 아침 수영을 하는데, 장바구니에 넣어 놓은 수경과 오리발이 혹여나 일본 제품이 아닌지 확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불매는 이 정도밖에 없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좋아하는 걸 포기하는 내 나름의 적극 동참이다.  

사실 우리는 일본 브랜드를 많이 접하는 직종이다. 바로 일본차다. 국내엔 일본차가 많이 팔린다. 토요타, 렉서스, 혼다, 닛산, 인피니티 브랜드로 한 해 수만 대의 차가 팔린다. 일본차 브랜드는 일본 이슈가 있을 때마다 몸을 사리고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멈추고 예전처럼 불티나게 일본차가 팔린다. 언제나 그랬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이 일본차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냄비 근성’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끄집어내 국민성을 폄하했다. 

범국민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많았다. 지금 이 시국에 <모터트렌드>에서 일본차를 다뤄야 하는지 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NO 재팬, 아베 OUT”을 외치는데, <모터트렌드>가 일본차 사진을 싣고 기사를 쓰는 게 맞는 걸까? 사실 <모터트렌드>에서 일본차를 뺀다고 콘텐츠 생산을 못 하는 건 아니다. 국산과 미국, 유럽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 된다. 그런데 일본차를 완전히 빼고 그 자리에 국산차 콘텐츠를 더 넣으면 애국일까? 

우리는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감각과 의견을 <모터트렌드>에 담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동차를 시승하고 그 차가 가진 특징과 장단점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우린 당장 달려가서 자동차를 구매하라 부추기지 않고, 사면 안 된다고 책동하지 않는다. 구매는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고 우린 그 선택과 구매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가 일본차 기사를 빼면 일본차 불매운동이 더 깊고 길게 번질까? 천만의 말씀. 정보의 전달이 구매욕을 촉진하지도 않고 정보의 단절이 불매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불매운동과 정보의 전달이 무관하다고 판단해 9월호에도 일본차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신형 토요타 프리우스를 시승하고 렉서스 UX를 재규어 E 타입과 비교했다. 

우리는 일본차를 다룰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의 결과가 빨리 나오고 있다. 이미 일본차는 불매운동의 한복판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차는 지난 6월 3946대가 판매됐지만, 7월 1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이후 7월 판매량이 32.2% 감소한 2674대 판매됐다. 기존 계약이 더 빠지는 8월엔 판매량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판매량 감소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일본차 브랜드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더욱 우려하는 건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 손상일 것이다. 그들의 제품력은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우수하지만, 뜻하지 않은 외부적 요인(아베 신조)으로 판매량 감소와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라는 피해를 입게 됐다. 

<모터트렌드>의 첫 번째 존재 가치는 독자에게 정보와 경험을 전달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브랜드를 선별하고 모델을 제외하면 우리 책을 구매한 고객들은 알게 모르게 정보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아베 신조가 밉고, 광적으로 치닫는 일본 우익이 보기 싫어도, <모터트렌드> 한국판이 일본차를 다루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 <모터트렌드>의 첫 번째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다. 

혹여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모터트렌드>에 일본차를 싣는다고 나와 우리 에디터들이 친일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절대 아니다. <모터트렌드>는 친일도 반일도 하지 않는다. 일본차 브랜드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도 없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과 도를 넘어선 역사 왜곡, 경제 침략,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이 걱정되고 속상하며 화가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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