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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Nov 22. 2019

#18. 14주년과 70주년

<모터트렌드> 에디터들은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14년 전, <모터트렌드>가 이 땅에 정착했던 당시는 잡지사들이 돈을 꽤 많이 벌던 시절이었다. 내가 일했던 한국 최초의 자동차 전문지는 한때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빌딩을 살까, 아니면 방송국을 차릴까 고민했었다고 한다. 다만 행복한 고민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로 회사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방송 쪽에 거금을 투입했지만 회사가 휘청할 만큼 큰 손실을 입었다. 아마도 빌딩을 샀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일개 잡지사가 방송사를 꿈꿀 정도로 당시는 잡지사들이 돈을 많이 벌던 시절이다. 이유는 광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외국 잡지의 판권을 사들여 국내에서 발간하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는 라이선스 비용이 그다지 높지 않았을뿐더러 외국 기사와 이미지를 입맛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더 풍성한 내용으로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모터트렌드>도 라이선스 잡지 붐이 일었던 14년 전에 이 땅에 발을 디뎠다. 한국에서 처음 발간되는 미국 자동차 잡지였다. 난 아직도 14년 전의 <모터트렌드>를 기억하고 있다. 자동차의 나라에서 온 이 자동차 전문지는 꽤 센세이셔널했다. 재기 발랄하고 통통 튀는 기사들이 화려한 디자인으로 포장돼 페이지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당시 로컬 잡지들은 페이지를 꽉꽉 채우기 위해 텍스트와 사진을 바둑판처럼 배열했고 난 그게 당연한 자동차 잡지 디자인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시 토종 자동차 전문지 기자였던 내게 <모터트렌드>가 얼마나 센세이션했을까.

14년이 지난 지금, 외국물의 신선한 충격을 줬던 그 잡지의 편집장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 하지만 상황은 14년 전과 많이 다르다. 당시와는 다르게 잡지사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이유는 광고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는 광고할 곳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잡지가 소비자를 유혹하는 하나의 좋은 채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우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유튜브와 각종 동영상 채널을 통해 광고를 접한다. TV 드라마를 보는 중에도 광고가 나오고, 야구 중계 화면 중 그라운드에 자동차가 굴러다닌다. 블로그 등의 개인 미디어에도 광고가 붙고, 소셜 미디어에도 교묘하게 광고가 숨어 있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원치 않음에도 너무 많은 광고에 노출된다.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선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다. 때문에 손으로 직접 페이지를 넘겨야 하고 동영상도 실을 수 없는 책은 광고주들의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많던 잡지들이 슬금슬금 없어지기 시작했다. 라이선스 자동차 잡지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모터트렌드> 14주년 기념호에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현실이 그렇다. 

이렇게 여의치 않은 시장 상황에서도 <모터트렌드>가 꾸준하게 매달 책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책을 애독해주는 독자 여러분이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 좋은 콘텐츠로 페이지를 꽉꽉 채운다고 해도 보는 이가 없다면, 우리가 책을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된다.  

다행히 <모터트렌드>는 아직 사장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독자와 소비자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잡지사의 태생적 생리를 탈바꿈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미 <모터트렌드>는 다수의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홈페이지 등 유통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독자에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모터트렌드×다음자동차 익스피리언스 데이(10월 8일)를 올해 또 개최한다. 책이나 영상을 통한 간접 체험이 아닌 독자와 소비자가 차를 타고 보고 만지는 직접 체험을 제공하는 것 또한 잡지사의 범주를 벗어난 모험적인 시도로 봐주면 좋겠다. 이렇게 <모터트렌드>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건 아직까지 <모터트렌드>를 찾는 독자들이 많은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터트렌드> 에디터들은 우리 책을 오랫동안 구독해준 독자들에게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독자들을 직접 찾아가 고마움의 표시로 특별히 제작한 감사패와 익스피리언스 데이 초대권을 전달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모든 독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모터트렌드> 편집장에겐 현실적 불가능을 가능케 할 권능이 없다.

서울을 비롯해서 강원도 평창, 세종시, 전북 익산, 부산시까지 내려가 우리의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전했다. 다섯 명의 장기 독자 모두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평창군에 사는 김영찬 씨는 <모터트렌드>를 한 권도 빠짐없이 13년간 모으고 있었고, 세종시의 허윤 씨는 20대 청년 시절부터 보던 <모터트렌드>를 이젠 아들과 함께 함께 보고 있다. 그렇게 지난 14년 동안 <모터트렌드>는 그들 생활의 일부로서 친구 때로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다섯 명의 독자가 우리에게 건넨 말이 있다. <모터트렌드>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14년 전과 같이 14년 후에도 <모터트렌드>를 구독하겠습니다.” <모터트렌드>를 가장 오래 구독한 이중환 씨가 박호준에게 건넨 말이다. 14년 후에 내가 <모터트렌드>에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아마 없을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물론 14년 후에도 <모터트렌드>가 이 땅에서 계속 책을 만들고 콘텐츠를 생산할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러길 바란다. 다만 그때가 되면 잡지사가 왕년에 돈을 많이 벌었던 것처럼 <모터트렌드>도 돈을 많이 버는 자동차 전문 미디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돈이 주체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벌리면 방송국을 차리는 우는 범하지 말고 빌딩을 사야 한다. 그리고 그때엔 <모터트렌드> 편집장에게도 현실적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권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모터트렌드> 미국판은 올해 70주년이 됐다. 그들은 70년 동안 잡지 팔아서 빌딩도 사고 방송국도 차렸다. 그리고 편집장 에드워드 로는 <모터트렌드> 그룹의 수석 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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