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Feb 08. 2023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소주학개론

 이제 나는 지난 N년간 소주와 함께하며 즐거웠던, 깨우쳤던 수많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그려보려 한다. 브런치북 '소주학개론'으로 묶일 이 글들은, 오후 4시 ~ 새벽 5시에 보실 것을 권장한다.  이 책을 펼쳐내기 위해 힘써준 울산의 모 안경원 사장님께 특별한 감사를 보내며, 늦은 밤에 대리운전까지 하며 나를 챙겨준 아내에게 죄송한 마음도 함께 담아 보낸다.





내게 오는 길

 투명하고 쌉싸리한, 하지만 아련한 단맛으로 마무리하는 그 아련함에 반해버렸다. 아참, 사실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뭐 싫어하지는 않는다. 함께 어울릴 사람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조연'으로 술을 찾는다. 흥을 돋우기 위해. 재미없고 어색하게 이어지는 대화의 윤활제로 나는 술을 더한다. 나는 그중에서 소주가 좋다. 부담 없이, 배부르지 않게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우리 술. 소주.





희생정신

 소주를 보며 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배운다. 무더운 여름에는 이까지 시리게 만드는 차가움으로 나를 달래려, 영하의 냉동고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소주. 차디찬 겨울에는 팔팔 끓는 국물을 먹을 명분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 엄동설한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부드럽게 나를 맞아주시는 주님, 아니 소주. 나는 누군가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이렇게 진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짧은 한 모금과 반대되는 긴 여운으로, '크'라는 소리와 함께 눈 감게 하시어 겸손을 가르치시는 주님. 아 나는 오늘도 그 깊음에 고개 숙인다.

 


겸손

 제 아무리 고래라고 할지언정, 소주병 개수가 한 자리를 넘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컵에 물을 채울 때 강한 수압으로 채우면, 금방 찰 것 같지만. 오히려 강한 수압으로 컵바닥에 닿은 물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여기서 수압을 반만 낮춰도 컵의 물은 밖으로 튀지 않고 차분히 차오른다. 이것은 술도 같다. 제 분수를 잊고 무리해서 급하게 채우다 보면, 결국 탈이 난다. 애써 참아도 넘쳐나는 물을 막을 길은 없다. 이렇게 소주는 욕심부려 세상을 가지려 했던, 나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하는 무서운 스승이기도 하다.


즐거울 때 마셔라

 소주는 꼭 즐거울 때 마셔야 한다. 슬픔도 기쁨도 배가시키는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힘들 때 술이 생각난다고 자주 찾게 되면 의지하고 의존하게 된다. 오늘의 소주 한잔이 즐거움을 기념하는 마무리가 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의 즐거움을 맺으러 부엌으로 떠난다.


#소주 #글루틴 #팀라이트 #글쓰기





작가의 이전글 과일은 왜 후식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