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웹 소설 느낌이 나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지어보았습니다.
작품설명
언제나 달달한 로맨스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면
캐릭터들이 제 마음과 달리 움직여요.
주인공이 누굴 죽이거나 (아님 스스로 죽거나) 귀신에 씌이거나..
남편이 슬슬 제 정신세계를 의심할 때쯤 장담해야 했죠. 나도 간질간질하고 풋풋한 연애 이야기, 그런 거 진짜 쓸 수 있다고..
그래서 써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를 스무 살이 넘어 만난 적이 있는데요.
저는 버스 안에 있었고 그 아이는 정류장에 서있었어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거의 그대로인데 키만 꼭 농구선수처럼 훌쩍 자라 깜짝 놀랐었죠.
그런데 잠시 후 더 놀란건 유독 짧은듯한 그 아이의 한쪽 다리 때문이었어요.
처음엔 짝다리를 짚고 있길래 좀 애매했는데 곧 절뚝이며 걷는 걸 보았거든요.
내려서 인사라도 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해 연속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와 꽤나 친했던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정류장에 그 아이를 남겨둔채 제가 탄 버스는 떠났습니다.
창문으로 목을 쭉 빼고 멀어져 가는 그 아이를 한참이나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떠올렸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별똥별이 떨어지면,
강우는 12월 날씨치곤 턱없이 얇아 보이는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춥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온몸의 감각이 둔해져있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어 보아도 별 느낌이 없었다.
강우는 이런 몽롱한 정신과 알딸딸한 기분이 좋았다.
평소엔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니 맘껏 흐트러질 수 있었고, 불규칙한 자신만의 걸음걸이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그러다 껄렁껄렁하게 걷는 자신의 모습이 티브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어느 유명한 래퍼의 뒷모습 같다고 느끼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후’하고 긴 한숨을 내쉬니 달달한 입김이 뿌옇게 흩어져 시야를 가로막았다.
언제부터인가 시력이 나빠졌지만 안경을 끼지 않았다. 희미하고 흐릿한 세상이 더 편했다.
수능 직후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강우가 이제껏 몰랐던 세상으로,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세계로 한순간에 데려다 놓았다. 한쪽 다리가 5센티 짧아진 그때부터 삶은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주의를 하고 예방하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들이 의지나 희망 따위는 값싸고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삶은 환멸이고 자신의 모습은 경멸 그 자체였다.
사고는 강우의 젊음을 좀먹게 했고, 그는 겉모습만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따금 흘러나오는 캐럴과 구세군 종소리가 더해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연했다.
강우는 북적이는 거리를 빠져나와 한적한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이대로 추위에 정신을 잃고 잠이 들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우는 언제나 유성을 보고 싶어 했다.
별똥별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허공에 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하늘에 별을 찾아 한 줄로 선을 그어 내렸다.
지금 이 순간 유성이 떨어지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생각했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건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에 빌기엔 너무 긴 소원이었다.
‘천국에 가고 싶어요.’
이번엔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헛웃음이 나는 바람에 건조했던 입술 가운데가 ‘툭’ 벌어졌다.
윗입술에 혓바닥을 대보니 짭짤한 피 맛이 느껴졌다. 술이 깨고 있는 건지 입술의 통증과 한기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때 막차가 도착했지만 강우는 그냥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잠이 들어 정신을 잃게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얼핏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김강우! 야, 김강우!”
선잠에서 막 깨어난 강우는 취기까지 더해져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벌써 죽은 건가.’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않은 강우는 정신을 차려보려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그리고 여자를 자세히 보기 위해 가늘게 눈을 찌푸렸다.
“어? 너는..”
“나 한은수. 누군지 알겠어? 내가 얼마나 뛰어온 줄 알아?”
강우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얼굴을 하곤
숨이 가쁜 채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좀 전에 지나간 버스에 타고 있었거든? 근데 낯익은 남자가 정류장에서 졸고 있는 거야. 누구더라 생각하는 사이에 버스가 출발했는데, 다음 정류장쯤 가서 기억이 난 거야!
그래서 곧장 내려서 여기까지 뛰어왔다. 재밌지?”
강우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근데 왜 여기서 자? 추운데 큰일 나면 어쩌려고.”
“어. 버스를 놓쳐서 잠깐 바람 쐬고 있었어.”
“그럼 막차도 놓친 김에 근처 편의점에서 차 한잔할까? 너 바쁘지 않으면.”
은수가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강우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은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강우가 ‘흡’하고 기압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오랜 시간 추위에 앉아 있었더니 몸이 굳은 탓이었다.
코끝이 찼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양손도 한쪽만 닳은 운동화 속 두 발도 꽁꽁 얼어있었다.
둘은 조금 떨어진 채로 걸었다. 길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과 빨강, 초록 크리스마스 톤으로 다정하게 옷을 맞춰 입은 연인들이 이따금 지나갔다.
편의점 안은 따뜻했다.
은수가 뜨거운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커피 마실래? 아님.. 아직두 바나나우유 좋아하나?”
강우는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황해 그냥 커피로 하겠다고 얼버무렸다.
편의점 한쪽 구석에는 테이블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 개는 다 마신 숙취음료를 올려둔 채 꾸벅꾸벅 조는 남자가 차지하고 있었고 남은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았다.
“어디 살아?”
은수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아직 서정동 살아. 넌?”
“나두. 휴학하고 서울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동네 오니까 너무 좋다.”
은수는 말이 끝날 때마다 싱긋 웃는 습관이 있었다.
그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편의점의 따뜻한 공기 때문인지 몸은 물론 마음까지 살며시 녹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아, 아니다.”
강우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 흠칫 놀랐다.
“나는 뭐?”
“아. 아니. 잘 지낸 거 같다고. 되게 밝다.”
은수가 큰소리로 웃으며 나는 원래부터 한결같이 밝았다고 말했다.
“나 너 좋아했던 거 알지?”
갑작스러운 은수의 고백에 강우는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어 기침을 했다.
“뭐야. 몰랐던 거야?”
“어? 어.. 전혀.”
“운동회 때 농구 결승전에서 네가 역전골 넣어서 우리가 이겼잖아. 그때 내가 바나나우유에 편지 써서 고백했었는데.. 쯧. 괜찮아. 그때 넌 워낙 인기 많았으니까.”
잊고 살았던 기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강우는 운동을 좋아했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축구도 잘했지만 농구를 더 잘했다. 그 덕에 남학생들은 물론 여학생들까지 몰고 다녔었다.
“다리는 왜 다친 건지 물어봐도 돼? 아까 걷는 거 보고 놀랐어.”
“아.. 사고.”
“그랬구나.. 이제 괜찮아?”
“응. 이젠 괜찮아.”
은수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강우가 별것 아니라는 듯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
사고 이후 그렇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제야 은수도 웃으며 다행이라고 했다.
은수의 환한 얼굴은 마치 강우의 내면까지 밝혀주는 것 같았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나 동물 병원에서 알바해. 넌 강아지 키워? 아님 고양이 집사인가?”
강우가 희미한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은수가 핸드폰을 꺼내 작고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귀엽네.”
“강아지? 아니면 나?”
짓궂은 질문에 강우가 난감한 얼굴을 하자 은수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넌 고등학교 때랑 똑같다. 완전 그대로야.”
은수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때와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지만
서정고 3학년의 김강우와 그대로라는 말이 왠지 모를 용기를 주었다.
“둘 다.”
“응?”
“너랑 강아지 둘 다 귀엽다고.”
강우는 자신이 그런 말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이라 생각했다.
“우리 강아지 볼래 ?”
“어디 있는데?”
“우리 집. 여기서 두 정거장이야.”
“아. 근데 지금은..”
“지금 말고. 올해 마지막 날 뭐해? 그날 보여줄게.”
강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오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그래. 그날 보여줘.”
함께 편의점을 나와 은수가 조금 전 뛰어왔다던 그 길을 나란히 걸었다.
은수는 별것 아닌 강우의 말에 박수를 치며 호응하기도 하고, 웃을 때 강우의 팔뚝을 살짝살짝 건드리기도 했다.
삶이 지금 당장 끝난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던 강우가 어느새 12월 31일을 그리고 있었다.
사고 이후 내내 무겁기만 했던 다리는 처음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눈송이가 하나 둘 흩날리다 은수의 볼에 부드럽게 닿았고,
절뚝이며 은수를 데려다주는 강우의 머리 위로는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끝-
아무도 죽지 않은 저의 첫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을뻔했죠.ㅋ)
사실 원래 제목은 '크리스마스에 별똥별이 떨어지면'인데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재미삼아 부재를 지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