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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Dec 03. 2021

'관계'가 있다면 어디든 동네가 될 수 있어

푸디온 X 개항로프로젝트 미식투어 

개항로.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사는 나에게 인천은 엄두를 내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인천의 구도심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마음 속의 거리는 단번에 좁혀졌다. 기회가 있다면 개항로프로젝트 대장이라고 불리는 이창길 대표님을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진행하는 로컬 프로젝트에서 연이 닿아 지난 여름 그를 인터뷰했는데, 대표님이 설명하고 소개해주시는 개항로 거리의 특색있는 노포와 가게들을 보며 그들의 매력에 푹 빠졌더랬다. 당시 그는 미식투어를 기획중이라는 계획을 들려주었고, 나는 목이 빠져라 투어 오픈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2주 전인가, 드디어 미식투어의 신청 링크가 열렸다. 개항로프로젝트 미식투어를 진행하는 푸디온 대표님 말씀으로는 내가 첫 번째 신청자라고. 현재 미식투어는 당일치기 코스와 1박 2일 코스로 나뉘어 있고, 각각 목요일/금요일에 진행되는 듯 하다. 내가 신청한 당일치기 투어는 오후 3시 30분에서 7시 30분까지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투어였다. 


두 계절이 지나서 다시 만난 개항로프로젝트 그리고 본부



미식투어 가이드로는 푸디온 김태현 대표님이 나오셨다. 활달하신 분 같았다. 이창길 대표님이 인터뷰 때 미식투어 굿즈를 여러가지 고민하고 있다고 하셨었는데, 그중에 전원공예사 목간판 전종원 선생님이 제작하신 개항로 명패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노포와 협업한 물건들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굿즈로는 에코백, 스티커, 뱃지, 펜, 온더락글라스, 개항로프로젝트 쿠폰이 있었고 여기에 <개항로 사람들>이라는 책도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이전에 '개항로 이웃사람'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아카이빙한 인터뷰집 같았다. (이정도면 거의 명예 가이드급 정보력...) 



인이어를 끼고 있어 조금 멀리서 걷더라도 가이드님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개항로에 있는 오래된 건물들,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들을 돌면서 설명해주셨다. 


이날 코스는 


1) 태원잔치국수 - 2) 인천당 - 3) 메콩사롱 - 4) 개항로고깃집 - 5) 개항면 - 6) 라이트하우스 - 7) 개항로통닭 


이렇게 7곳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로 들른 태원잔치국수와 인천당. 두 가게는 바로 옆에 붙어있다. 가이드님이 투어 전부터 많이 먹으니 점심을 거르고 오라고 하셔서 내어주신 국수를 다 먹지 않고 남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먹고 더 먹어도 됐었다. 이 두 곳이 미식투어에 참여한 노포였다. 잔치국수집 사장님이 자가제면해 소분한 소면을 선물로 주셔서 참 좋았다. 개항로에서만 만날 수 있는 '굿즈'인 셈이었다. 


인천당은 정말 슥 둘러보고 나왔는데, 사장님이 열심히 반죽을 준비하고 계셨다. 보틀팩토리에서 하는 유어보틀위크 포스터도 붙어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봤는데. 가이드님이 과자 한웅큼을 사 모두에게 맛을 보게 해주셨는데,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그런지 산뜻하고 부담없는 맛이었다. 




그 다음으로 방문했던 메콩사롱과 개항로고깃집. 인터뷰차 개항로에 방문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두 집이었다. 메콩사롱에서는 반미와 쌈 한조각씩을 내어 주셨다. 자극적이지 않고 입에 감기는 맛이었다. 건강한 맛도 났다. 반미의 빵은 고소하고 바삭한게 적당히 좋았다. 메콩사롱 분위기는 이날 갔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았다. 


개항로 고깃집에서는 쫀살과 늑살을 주셨는데, 쫀살은 돼지 턱 부분이고 늑살은 소 갈비에 붙어있는 특수부위라고. 사장님 친인척이 도축장을 하셔서 귀한 부위를 이렇게 가져올 수 있는 거라고 한다. 사장님의 지시에 따라 소금, 와사비를 곁들여 먹었는데 쫀득하게 씹히는 쫀살의 식감이 참 재밌었다. 무엇보다 문을 나서며 내가 만든 <이면도로> 매거진을 발견해서 절로 웃음이 났더랬다. 



개항면에서 먹었던 온수면과 비빔면. 가이드님이 면의 식감을 잘 느껴보라고 하셨는데, 과연 면의 식감이 특이했다. 중국음식의 면발도, 라면의 면발도 아닌 것이 톡톡 씹혔다. 비빔면은 전에 먹었던 마제소바와 비슷한 맛일 줄 알았지만 양념된 참치 고명이 독특한 맛을 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먹었던 짭쪼름한 온수면이 이날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여름에 들었던 대표님의 설명도 물론 충분했지만, 투어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개항로는 조금 더 디테일했달까. 산부인과 건물을 리모델링한 라이트하우스에 숨은 온갖 디테일들을 설명으로 듣고, 발견하는 호사를 누렸다. 특히 내부의 벽지는 구찌, 에르메스의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에게서 벽지가 나왔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당시 산부인과 원장님이 그정도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마지막 코스였던 개항로통닭. 사실 가장 궁금한 곳 중 하나였다. 대표님을 만났을 때는 낮이었기에 이곳을 들를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도 <이면도로>를 만나서 반가웠고... 오랜만에 전기구이 통닭을 만나 새삼 반가웠다. 개항로통닭집은 여러모로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는데,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메뉴와 실내를 동네 사람인듯한 이들이 채우고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정말 가보고 싶어 들렀던 레바논버거. 아쉽게도 영업 종료시간이어서 먹어보지 못했다. 조금 자제하기도 했지만 투어 내 먹었던 음식들의 양이 사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주 4일 운동하는 성인 남성 기준) 아쉬움이 더했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신포시장 근처 번화가를 걸었다. 정말이지 흥건한 경험이었다. 이미 많이 걸었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이 동네를 걸으며 새로운 인연을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왁자하지 않은, 조금은 쓸쓸한 번화가 곳곳의 술집에 사람들이 왁자했다. 이런 감정은 대전에서도 느낀 적 있다. 선화동 근처, 조금은 쇠락한 도심 끝자락을 걸었을 때였다. 내가 걷고 있는 동인천의 이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외롭지 않을까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가능하다면 출근이나 피로감일랑 잊어버리고 이 동네를 끝없이 걷고 싶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어디로 나가면 무엇이 나오는지를 알고 싶었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 동인천역 앞의 맥도날드에 들렀다. 2층에 홀이 있었는데, 올라가보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테이블은 너저분했고, 의자들은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될대로 되란 식의 공간 같았다. 감자튀김과 쉐이크를 시켜 먹었는데, 이상하게 그 외롭고 쌉싸름한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용산 급행을 타고 4호선을 갈아타려 용산역을 나오자마자 큰 빌딩이 나를 반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서울의 팍팍함이 바로 이런 걸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 팍팍함이 공기와도 같았지만, 로컬을 탐구하고 방문하면서 조금은 그 감정을 알 것도 같다. 


'로컬'을 표방하는 어떤 곳에 가도, 그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없으면 어떤 것도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건물의 뼈대 같은 것이어서, 단단하게 세워지기만 한다면 그 위에 무엇을 쌓든 일이 수월해진다. 그런데 로컬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니 그게 정말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관계를 쌓는 것은 어쨌거나 누군가와 친숙해져야 하는 일이고, 그들의 세계에 진입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 무엇보다도 성실함을 요하니까. 


회사의 로컬 프로젝트로 1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30개가 넘는 가게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모두와 친해지진 못했다. 하지만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의 '동네'가 될 수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관광지인 나의 일터가 이제는 동네같이 느껴진다. 이 좋은 기분을 나만 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 관계를 이어주고, 발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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