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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Aug 05. 2019

[걸어서 동네 속으로] 나의 동네 여행 이야기

일상에서 끌어올리는 여행의 느낌

인파로 가득한 통근버스에 있다 저녁 비행기로 도착한 제주,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도착한 강릉 해변. 이것이 모두를 떠나게 만드는 느낌이 아닐까? 일상이라는 고리타분한 세상을 탈출해 신비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 거리에 상관없이 지금 있는 곳과 내가 있던 곳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여행할까? 그리고 몇 번이나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까? 중요한 것은 여행이 코스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라는 것. 다른 환경에 가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환경을 다르게 보는 거라는 사실이다. 나만의 시선, 한 시간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누구든 동네를 여행할 수 있다.


피렌체, 그리고 서촌

느리게, 느리게. 낯선 동네에서 디테일을 발견하는 법.


작년 겨울,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었기에 떠나기 전부터 긴장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입사했지만 결국 자리잡지 못한 직장을 그만두고 내린 결정이었고, 박봉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기에 내게 이탈리아행은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일 년의 운을 건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여행지로 총 세 나라를 꼽았다. 첫 번째는 모로코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생 텍쥐페리의 책 [사람들의 땅]에 영향을 받았다. 작가이자 비행사이기도 했던 그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던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죽기 전에 사하라 사막에서 자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은 런던. 그저 큰 나라를 한 번 가봐야 세상 보는 눈이 생긴다는 아버지 말씀이 있었고, 현재 운동하고 있는 팀이 런던에도 있었다(주짓수). 마지막 후보는 이탈리아였다. 당시 나는 건축을 어떻게 하면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지를 담은 [건축의 경험]이라는 책에 매료되어 있었고 책에는 이탈리아의 건축물이 많이 나왔다. 결국 최근 이탈리아를 다녀온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아 나는 이탈리아를 가기로 결심했다. 총 10일,  베니스, 피렌체, 로마에 각각 3일씩 머물다 올 계획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목표한 것은 두 가지다.  

1. 보고 싶었던 건축물을 최대한 많이 보고 올 것.

2.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올 것.


안도 타다오의 리스토레이션(그라시 궁), 카를로 스카르파의 올리베티 쇼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로마 현대미술관

내 첫 번째 목표는 베니스와 로마에 몰려 있었다. 베니스에서는 카를로 스카르파, 안도 타다오가 설계하고 레노베이션 한 미술관, 쇼룸 등을 모두 둘러봤다. 로마에서는 자하 하디드, 리처드 마이어, 렌조 피아노의 건축물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악착같이 사진을 찍고, 느낀 점을 최대한 글로 남기려 노력했다. 문제는 두 번째 목표다. 살아보는 여행이라니. 에어비앤비의 유명한 카피(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뭘까? 나는 동네를 무작정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찰할 수 있을 테니까.

피렌체의 돌길, 다이닝과 카페가 혼재하는 대형서점.

걷는 행위는 여행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느릴수록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창 밖으로는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타도 멈춰 서야 제대로 된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느리기는 해도 걸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면 내가 살던 곳과 여행지의 사소하지만 재밌는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여행의 디테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내가 걸었던 길들은 엄청난 관광지가 아니었지만 어떤 명소보다도 매혹적이었다. 평범한 곳일수록 작지만 흥미로운 차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걷던 그대로 나는 서울에서도 걷는다는 사실이다. 비록 한 시간여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이 내 갈길을 선택하는 자유를 누린다. 단 한 번의 여행이라도 이토록 진하게 남아 내 삶을 바꾼다는 사실이 놀랍다. 코스 중심의 여행은 사진을 남기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여행 - 관점 중심의 여행 - 은 경험을 남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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