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인정
패션이나 명품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에르메스라는 브랜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방 값이 웬만한 차 한 대 값은 한다든지, 돈이 있고 사고 싶어도 구매 실적이 없으면 살 수 없다든지, 매장에 갈 때 에르메스 제품을 착용하고 가야만 원하는 가방을 볼 수 있는 ‘비밀의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다든지, 심지어는 에르메스는 사람이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식의 무용담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에르메스는 왜 그렇게 비쌀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많다. 브랜드의 역사, 철학, 가치, 그리고 그것을 지켜온 원칙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이미 인터넷에 넘쳐나니 굳이 여기서 길게 적지는 않겠다.
명품은 아니지만 나 역시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소비되고,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시장의 원칙, 즉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니까. 가방이 1천만 원이든 1억이든, 수요가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가격을 매긴 기업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사고 싶으면 여유가 있든,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사면 되는 것이고, 사고 싶지 않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스스로 다행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에르메스 가방을 갖고 싶은 욕망이 없다는 것이다. 에르메스뿐 아니라 다른 명품도 마찬가지다. 멋지긴 하지만, 그 가격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는 내게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너무 갖고 싶다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갖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몇 년 전, 지금은 작고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의전 차량으로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부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들과 나눴는데, 대부분은 교황의 겸손하고 소박한 태도에 감탄하며 본받을 만하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한 명은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나도 교황이면 그렇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 말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i) 교황은 사회적 본보기이자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에 매 순간, 특히 공적인 순간에는 객관적으로 가장 훌륭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 결국 그가 기대되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는 점. ii) 교황이라는 직위 자체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의 위대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를 태우는 차량의 급이 그의 위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그는 굳이 더 큰 인정이나 과시가 필요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비라는 것이 개인의 만족도 있겠지만, 사실 주변의 호응도 큰 몫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렵게 (위의 과정들을 뚫고) 에르메스 가방을 샀는데, 주변 사람들이 에르메스를 몰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결국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하는 소비는 남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상당수가 아닐까 싶다. 만약 소비로서 인정받아야 하는 욕구 자체가 없다면 우리의 소비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혼자 한 번쯤 돌아볼 만한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