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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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삶에 대해 몇 부분으로 나누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서 좋았다. 그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세계의 여러 어른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서른이란 나이를 넘어서며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 친구라면 어떻게 했을까?'보다 '어른은 어떻게 할까?'로 대입하는 대상이 바뀌고 있다. 각설하고 32일간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며 남녀노소 불문 수많은 까미노를 만났고 길 위에서 만난 '어른'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하고 싶다.
1. 모두가 부지런하고 단 한 명이 게으르다.
어른은 대게 부지런하다. 젊은이보다 일찍 일어나 일찍 출발한다. 나중에 젊은이들이 어른을 지나치겠지만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는 똑같이 주파한다. 32일 동안 아침에 게으름 피우는 어른은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2. 힘들어도 잘 웃고, 점잖은 어른도 장난꾸러기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누구나 힘들기 마련, 다리가 아프고, 어제 알베르게(숙소) 침대가 너~~ 무나 푹신한 나머지 허리가 아프고, 가방 무게에 어깨가 아프고, 무엇보다 스페인의 햇살은 어찌나 따가운지, 덥기도 덥다. 그래도 "부엔 까미노!(즐거운 여행길이 되길)"하고 인사를 건네면 언제나 활짝 웃으며 인사해주는 사람은 어른이다. 그리고 어른은 장난꾸러기다. 식사를 하거나 길을 걷다가 아메리카고 유라시아고 오세아니아고 서로 '깔깔깔'이다. 흰머리 수북한 캐나다 할아버지가 이마에 뾱뾱이 볼펜을 붙이질 않나, 스페인 할아버지가 카드놀이에서 이겨 딱밤을 때리는데 신이 나 있고, 귀여운 머리끈을 한 아주머니와 내리막길을 걸으며 클래식을 부른다. 사진도 다 같이 익살스럽게 찍고 다들 흥겹다. 이 길 위에서 본 어른은 모두가 손자, 손녀딸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선함을 가졌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외국 어른을 보면서 나의 아버지도 외국의 젊은 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익살스럽게 행동하실지가 궁금하다.
3. 몇몇 한국 어른을 삐딱하게 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사람이 정말 많다. 외국인들은 여기에 한국사람 왜 이렇게 많이 오냐며 의아해한다. 한국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 어른을 많이 보았는데 그분들을 보고 든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우리가 요리하는 것을 보고 어느 한국 어른은 "내가 돈이 많다. 내일 마을 도착하면 내가 돈 낼 테니까, 너희가 요리하고 그렇게 하자"라고 좋은 제안을 한다.
빨래를 할 건지 물어보곤 "내가 얼마를 낼 테니까, 빨래 돌릴 때 같이 돌리고 내 거는 침대 위에 올려둬라" 1/N 하면 한국 어른이 좀 더 내는구나 좋은 제안을 한다.
하루는 어느 알베르게(숙소)의 한 방에 한국사람이 많았는데 한 어른은 일장연설을 하고, 또 다른 어른은 "다음 마을에서 애들 집합시켜요?"라고 말한다. 다음 마을에서 다 같이 밥 먹자는 표현인 듯한데 듣기에 거슬렸다. 하루는 그 한국 어른이 한 젊은 친구에게 밥을 사주더니, 어느 부동산에 가서 길을 알아보라는 둥, 잡다한 걸 시켰다고 한다. 그 젊은 친구는 그래도 돈이 굳었으니까 별 신경을 안 쓴다고 한다.
어느 어른은 한 젊은 여성에게 "나 호텔방을 잡았으니 놀러 와"라고 했다는데 이건 무슨 추태인가?
길 위에서 본 몇몇 한국 어른의 모습이다.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열심히 걷는 모습을 보니 기특해서 밥 한 끼 사줄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곳에서 본 외국 어른과 비교를 해서일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내키지 않는다. 젊은이를 '고용'하려 드는 기분이다.
나는 그 어른들을 피했다. 아마 그 어른들은 나를 인사도 하지 않는 싸가지없는 놈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따라갈 인생길이고 옳고 그름과 '예의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이었다. 어찌 됐건 '나는 돈을 줄 테니 너는 행동을 해라'는 좋지 않은 관계다. 그래서 외국인들과 함께 요리하거나 식사했던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매일 약주를 하시고 말씀이 많은 어른이 있었다. 항상 피하다가 마지막 날엔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그 어른과 비슷한 연배인 다른 어른도 계셔서 그분들의 지혜와 경험을 보고 싶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그 어른들은 모두 자릴 뜨고 술에 취한 어른과 나만 남았다.
피하는 게 답일까? 나는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데...... 대화가 되는 듯하면서 했던 말씀을 또다시 시작하면 말짱 도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