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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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저우리에서 러시아 자바이칼스크로 국경을 넘었다. 걸어서 넘으려 했으나, 육로로 개별적인 국경 통과는 허락하지 않아 러시아 무역상들의 도움을 받아 통과했다.
(좌) 러시아 무역상들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우) 무역상 남매, 서로를 찍는 척하면서 계속 나를 찍길래 함께 찍자고 했다. 뒤에 앉은 러시아인의 표정...
2015년부터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러시아를 60일 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 그들은 참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농담도 곧 잘 한다.
러시아 입국심사 중에 사래가 들어 재채기를 했다.
"메르수? 메르수?"
"니에(아니요), 니에(아니요)"
내 배낭 무게를 쟀다. 20kg이 넘으니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며 열어서 꺼내라고 한다. 러시아 무역상들도 커다란 봇짐을 열어 내용물을 엎었다가 다시 담는다.
중국 국경에서 버스를 타고 러시아까지 3km를 가는데 3시간가량 소요되었다. 두 나라 모두 깐깐하다.
어쨌든 여긴 러시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티켓을 끊고서 이틀 간 텐트에서 지냈다. 체력 유지를 위해 자바이칼스크 일대를 달리고 있는데 군용차를 타고 가던 러시아 군인이 나를 불러 세운다. 러시아 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도무지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나더러 받으란다. 수화기에서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이 또한 도무지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영어 초보인 나는 얼굴을 보고 기본적인 대화는 되나, 말만 들어서는 힘들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말 같았다. 그런데 난 신분증이 텐트에 있고 지금은 없다고 했다. 운동하는 중이라 여권을 두고 왔다고 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러시아 군인은
"여기는 국경이다. 뛰어다니지 마라, 그리고 왜 여기에 있나? 빨리 이 국경지대에서 벗어나라"라는 뜻을 표했고, 나는 "다, 다, 다, 다(네, 네, 네, 네)"만 했다.
다음 날 또 달리기를 했다. 그 군인에게 또 걸려서 엄청 혼났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일은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탄다.
어느 러시아 유학생의 말을 빌리자면, 러시아 학생들은 중국에 대해 배울 때 '중국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라고 배운다 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그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다.
내가 알고 있던 러시아는 새하얀 시베리아 눈밭이다. 하지만 기차를 타며 바라 본 풍경은 광활한 초원과 숲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바다나 호수 같은 고인 물을 보기 힘들기 때문인지 호수나 큰 강물이 나올 때면 창가로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는다.
-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아이들 -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흥미롭지만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데 모든 것에 한계가 있다. 책을 읽는 것, 창 밖을 보는 것, 잠을 자는 것, 이 모든 것에 한계가 있다. 답답하다. 너무 답답하다. 그나마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20~30분 정도 정차할 때, 그때마다 사 먹던 아이스크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시원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차가 출발한지 3일 정도 지났을까? 한두 명씩 내리기 시작하고, 한두 명씩 새로이 기차에 오른다. 말은 서로 안 통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조금씩 러시아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 앉은 할아버지를 배웅하던 할아버지의 여동생은 상당히 유쾌한 분이셨는데
"(하하호호 웃으며) 우리 오빠 정말 좋은 사람이다. 어디까지 가느냐? 기차 안에서 잘 부탁한다."
"저도 좋은 사람입니다. 저 또한 잘 부탁드립니다."
기차 밖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할아버지의 여동생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차가 출발하자 웃으시며 나까지 배웅해 주신다.
할아버지는 못 보셨겠지만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손수건을 꺼내 우는 모습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못 보셨겠지만 할아버지도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일주일 정도 기차 안에 있으니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다. 언젠가 어느 여가수가 '24시간이 모자라'다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한번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한 명씩 기차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내 주변 젊은 친구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풍선 다발까지 들고 나와 반기는 모습이 정겹다. 먼 곳에서 훈련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구나, 꾀죄죄하던 친구들이 군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낯설다. 오늘도 러시아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다.
러시아는 땅이 커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넘게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래서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게 다음을 기약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는 게 그저 한 번의 로망이었다면 러시아 사람들에겐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삶이었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내리시는 날이다.
젊은 청년은 높이 있는 할아버지의 짐을 내려놓고, 기차가 서길 기다린다.
할아버지는 마중 나온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