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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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5일 안나푸르나 라운딩 12일 차
묵티나스(Muktinath)에서 까끄베니(Kagbeni)로 가던 중 땅이 울렁거렸다. 이내 나를 감싸고 있는 사방의 고산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먼지가 일었다.
휘청대는 어지러움에 처음 든 생각은 '그동안 걷는 게 힘들었나? 내가 이렇게 휘청거리다 쓰러지는 건가?'
내 옆에 있던 중국계 미국인의 바운스 동작을 보고서야 나의 문제가 아닌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을로 들어서니 뭔가에 홀린 듯이 소리치며 뛰쳐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터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었다.
지진이 있었던 첫날 좀솜(Jomsom)에서 묵었는데 숙소 주인이 오후 9시와 새벽 3시에 지진이 난다며 모두 공항으로 가서 잠을 자야된다고 했다. 나는 며칠 전부터 치통이 생겨 밥을 씹는 것도 쉽지 않아 잘 먹지 못했고, 몸이 안 좋으니 그냥 여기서 자겠다고 했다. 사실 그들이 유난을 떤다고 생가했다.
지진이 있었던 둘째 날 오전에만 잠시 걷고 투쿠체(Tukue)에 일찍 도착하여 푹 쉬려고 했다.
낮 12시, 여진이 일어났다. 학교 공터로 대피했다가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아저씨는 수시로 나를 깨워 대피해야 된다고 했다. 치통으로 너무 힘드니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 둬 달라고 부탁했다.
-치통은 세계여행 전에 사랑니를 뽑았는데 한쪽에 치아 조각이 남아 새로이 올라오며 신경을 건드렸다.-
지진이 있었던 셋째 날 아침, 트레킹을 계속할 것인지 잠시 고민을 했다. 지진이 났던 첫날 집에 연락을 드린 이후로 연락을 못 드렸다. 지나는 마을마다 전기도 통신도 마비상태다. 왠지 나의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내려갔다.
포카라에 도착해서 이번 지진의 심각성을 알았다. 뉴스에서 사상자가 4,000명에 이른단다.
먼저 집에 전화했다. 울먹이는 가족, 어머니의 목소리, 이틀 동안 어머니랑 여동생은 서로를 붙잡고 '제발 살아만 있어라.'며 울고불고 난리였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도 첫날은 기다려보자며 침착하셨지만 이틀째 저녁부터는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냐며 안달복달하셨단다. 동생은 네팔 대사관에 글까지 올렸는데 어떠한 대답이 없어 답답해 미칠뻔했단다.
"오빠야, 우리 진짜 오빠야 없으면 못 산다고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하하하, 괜찮다. 살아왔다이가"
"엄마가 오빠야 옷도 한 벌 제대로 못 사줬다고......"
"내 옷 한 벌 벌었네"
나의 가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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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연장을 했다.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지난 2007년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강타했을 때, 해병대에서 연대급 병력이 수해복구를 했었다. 그때의 경험을 되새겨보았을 때 지금 당장 개인이 돕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만 흘러갔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서양 여행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며칠 간 회의를 하고 숙소 앞에 대자보를 붙여 그들이 네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외부인과 소통했다. 포카라의 주요 목지점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거리공연을 통해 돈, 텐트, 침낭, 매트, 옷가지 등을 모았다. 돈으로 식수와 쌀을 사고, 며칠이 지나자 기부물품으로 큰 가게 하나를 가득 채웠다. 오늘은 그 물자를 차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한없이 생각만 하는 동안 그들은 조직을 구성하고 계획을 짜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도 그들과 함께 구호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왜 그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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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 있으면서 규칙적으로 여진이 있었다.
오늘 또 한 번의 여진,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거리로 뛰어나왔고, 나도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라면봉지를 들고 있던 오른손은 왜 이리 떨리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하고 나서 안심하고 건물을 쳐다보는 반면에 몇몇 사람들의 행동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감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뛰어 온 여자, 택시를 타고 급히 온 여자,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온 남자
어딘가로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
그곳은 초등학교였다.
수많은 아이들과 수많은 엄마, 아빠가 만나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았다.
(위) 지진으로 인해 거리로 대피한 사람들
(아래) 여진이 일자 부랴부랴 아이들을 만나러 온 부모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