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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Apr 02. 2024

젖빛 은하수

직접 수유, 그 개운함에 대하여


아무리 성능 좋은 최신식 유축기를 써도, 춘이가 직접 내 유륜을 빠는 것만 못하다.


유축기를 양쪽 가슴에 번갈아 10분씩 대고 있으면 180ml의 모유가 나오는데, 그렇게 20분을 공들여 모유를 뽑아내도 잔여감이 느껴진다. 불편감은 사라져도 개운하진 않다. 심지어 가슴이 붓기도 한다.


나에게 최고의 유축은 직수다. 나는 춘이가 직접 리드미컬하게 빨아주는 수유 시간을 사랑한다. 유축왕 춘이가 양쪽 가슴을 5분씩만 빨아줘도 유축기를 20분 사용한 것보다 훨씬 홀가분하다. 말끔하게 젖을 비워낸다. 가슴이 너덜너덜 헐렁헐렁해진다. 아으, 상쾌해!




출처 : 한국의 농기구(2001, 박호석ㆍ안승모)


농사일에 쓰이는(밭 갈기) 갈퀴가 떠오른다. 춘이가 그갈퀴로 내 가슴속 유선을 따라 스윽스윽 서걱서걱 거칠게 훑으면서 굵은 모래알이나 뭉친 흙덩어리 굳은 뿌리 덩어리를 파헤치듯 굵은 젖줄기를 다 긁어내준다. 실제로 '흙 긁는 소리' 또는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샤악 샤악.


춘이가 내 유두와 유륜을 찾기 위해 머리를 도리도리 하며 겨드랑이와 젖꼭지 사이를 파고드는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는 말로 표현이 안될 만큼 감명 깊다. 진지하게 파고드는 그 도리도리. 3등신 춘이가 그 큰 얼굴로 내 가슴팍을 파고들 때는 '겨드랑이에 땀이 났는데, 냄새 안 나려나?'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직접 수유를 할 때는 나는 우주가 된다. 내가 따로 장을보고 조리하지 않아도 내 몸은 알아서 밥과 반찬을 만들어낸다. 면역 성분을 담은 영양제도 함께 내어주니 더욱 좋다. 춘이를 오동통하게 자라나게 하는 따뜻한 젖. 그 젖으로 내가 사람 하나를 살리고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부심. 부끄럽지만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유축기 덕분에 나는 외출을 할 수 있다. 남은 젖을 빼내게 해주는 고마운 기계. 다만 지이이익 지익 반복적인 기계음을 들으면 젖소의 마음을 절로 떠올리게 되는데 직접 수유만큼의 감동은 없다.


젖방울이 춘이의 입 안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의 기분 좋음을 서툰 그림으로 남겨본다.



김지애(2003)

①작품명 : 모유별

②작품 설명 : 모유수유의 신비로움을 우주와 별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 유두에서 나오는 대여섯 갈래의 젖 줄기는 은하수요, 젖방울은 하나 하나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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