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애 Apr 02. 2024

극복 좀 그만해

모유수유, 분유수유

열심히 하면 된다.

산업시대 인재 느낌이 폴폴 나는 내 신조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그 신조가 깨졌다.


가령, 나는 '완전 모유 수유를 하겠다'노라 임신기간부터 다짐했다. 의지를 다졌다. 막상 출산을 하고 보니 모유수유에 대한 나의 열의는 민망할 정도로 무색했다. ①내 유방이 춘이가 충분히 먹을 만큼의 젖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②춘이가 젖을 잘 빨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완모를 향한 나의 열정이란 축구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 딱 고정도의 위상이었다.


나는 오늘 '완모'를 포기한다. 분유의 도움을 받되, 모유가 主가 되는 3개월을 목표로 한다. 저녁에는 젖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분유를 먹이자. 비장하게 이마트로 가 '힙'이라는 분유를 사 왔다.  


-완전 모유수유

-혼합 수유

-완전 분유수유


혼합수유 결정으로 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대학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모유와 분유'사이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거쳐왔음을 고백하며 위로해 주었다.




나 아기 이빨 나서 바로 그만두었어! 난 원활치 않아서 겨우겨우 혼합으로 버티다가 ㅎㅎ -


나도 모유 나오긴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어ㅜㅜㅋㅋ 그래서 아기 태어나자마자 혼합수유(모유+분유) 시작해서 8개월부터는 일하면서 모유 끊고 분유만 함.. 만약 혼합수유한다고 해서 죄책감 갖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모유 잘 나오는 게 어디냐! 난 모유 없어서 겨우찔끔씩 짜내서 줬다 ㅋㅋㅋ 3개월까지 ㅋㅋ 거의 분유를 먹인 거나 다름없음


난 젖이 안 나왔어. 엄마가 편한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분유 수유했지만 우리 아기 둘 모두 건강해 ㅋㅋㅋㅋ 초유 끝났으니 모유 고집할 이유도 없을 것 같고. 아마 모유로 끝내면 뿌듯함이야 있겠지만


모유수유를 고집하면서 그로 인해 엄마가 힘들어하면 아이한테 안 하느니만 못하는 수유 방법이 아닐까 싶어.


분유 수유하게 되면 ㅡ 혹시나 나중에 아기가 감기같이 잔병치레로 아플 때 모유 수유 안 해서 애가 더 아픈가 싶기도 해.. 내 탓인가.. 하며 자책할 수도 있는데(나야..) 절대 그럴 필요 없음 ㅋㅋ!! 그냥 다 아프고 크는 거더라 ㅎㅎ  


나는 완분 했어ㅎㅎㅎ 가슴 통증 처음 왔을 때 너무 아파서 유축 좀 하다가 그냥 분유로 다 먹였어. 맞아ㅜㅜ 나도 죄책감 크고 그랬어!!! 근데 분유로 바꾸니까 내 옷 젖는 것도 없고 밤에도 푹 자고 남편이 대신 먹여줄 수도 있고  장점이 많아! 지금 우리 애는 건강혀ㅎㅎㅎ


와 그동안 완모했어??? 대단해!!! 난 40일까지만 분유랑 같이 혼합수유하다가 단유 했어. 아기가 모유수유 한 시간 만에 애가 배고프다고 난리여서 정말 하루 종일 젖만 먹이고 있는 것 같아서 단유결정했어ㅠㅠㅋㅋ ㅋㅋㅋㅋㅋ


나.... 한 100일 정도? 했었오^.^ 분유 먹이면 삶의 질이 달라져ㅎㅎ 엄마가 편한 게 최고야~




완전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하면 일정 부분 '실패'한 것이라는 패배감. 젖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덜 건강하다는 뜻이라는 자의적 해석, 내 아이에게 최고의 영양을 듬뿍 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무능력감까지.


완전 모유 수유를 하면서 엄마가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는다면, 분유를 먹이면서 아쉬운 점이 생기는 것보다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아니겠냐는 말. '훌륭한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는말, 육아는 장기전이니 편하게 하라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는 훌륭한 엄마보다는 행복한 엄마가 되겠다.

또다시 다르게 써본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


아니다. 글을 쓰다 생각이 바뀌었다. 임신, 출산을 거쳐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미 훌륭하다. 모유든 분유든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이미 훌륭하다. 더 훌륭해지려고 노력하지 말자. 열 달 동안 춘이를 품느라, 22시간 동안 진통을 겪어내느라, 출산 후 몸의 변화에 적응하고 애쓰느라 고생하는 나에게 현재완료형으로 말해주고 싶다. 대단해. 멋져. 최고야. 충분하니 더 애쓰지 마. 극복 하지마.

매거진의 이전글 고개를 주억거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