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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Apr 09. 2024

실리콘 턱받이를 꽉 채우지 말아주세요.

학부모 민원


밀물이었다가 썰물이었다가.


요가를 하는 내내 미지근한 슬픔이 자꾸만 차올랐다. 오늘 개운하게 잘 일어나서 등원까지 잘 시켰는데, 이 기분의 정체는 뭘까?


오전 9시 05분. 춘이 가방 앞쪽에 내 핸드폰을 넣어둔 것을 깜빡했다. 다시 춘이 교실로 갔다. 아침 간식을 먹기 위해 턱받이를 한 무표정한 눈빛의 춘이와 마주쳤다. 세상에. 춘이 목에는 실리콘 턱받이가 야무지게 걸쳐져 있었다. 내가 단 한 번도 그 단추까지 조절해 본 적 없는 목둘레였다.


어제 춘이가 여벌옷으로 갈아입고 하원했던 것이 떠올랐다. 스스로 하길 좋아하는 춘이. 아직 서툰 솜씨라 액체류를 먹을 땐 종종 가슴에 흘린다.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씻기고 닦이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신다.만 1세 반은 교사 당 학생수 비율이 1:5다. 춘이를 씻기고 입히는 동안 나머지 9명의 원아들은 두 번째 담임선생님의 몫이 되리라.


춘이가 스스로 물을, 두유를, 국물을 마시다 쏟아도 옷이 젖지 않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겠지? 평소 세네 번째구멍에 끼워 두르던 턱받이는 두 번째 구멍에 끼워져 있었다. 집이었으면 답답하다고 표현했을 춘이가 덤덤하고 차분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기도 했다. 괜한 엄마의 안타까움이리라 생각하다가도 '한 칸만 더 널찍하게 끼워도 충분히 옷에 젖지 않을 정도가 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실리콘 턱받이 길이 조절까지 말씀드리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춘이가 실제로 답답했을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엎치락뒤치락 번복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결심이 섰다.


오늘 키즈노트에 하루생활 알림장이 올라오면, 담임선생님께 요청드려야겠다. 실제로 부탁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써 놓고 고민해 보기로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춘이 엄마입니다. 집에서 혼자 춘이를 보는 것도 벅찬데, 다섯 명의 유아들을 가르치고 돌보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시지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춘이는 알러지성 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면이 아닌 재질이 피부에 닿으면 간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목, 입술 주변 같이 피부가 얇은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혹시 춘이가 어린이집에서 에 밥을 먹을 때 실리콘 턱받이를 조금 더 여유롭게 채워주실 수 있을까요? 스스로 하기 좋아하는 춘이라 옷에 국물이나 두유를 잘 흘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날이 참 따뜻합니다. 많이 쏟은 것이 아니라면 금방 마를 테니 하원할 때옷을 갈아입혀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쁘신데 감사드립니다.



2년 차 신규 엄마의 마음은 늘 이렇게 야들야들하다. 우리 춘이 발바닥처럼 아직도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굳은살은 언제 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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