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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돈가스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4학년 2학기 국어 8단원 '의견과 까닭'

by 김지애


국어 8단원 '의견과 까닭' 첫 시간.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 읽기 제재를 함께 보기 전, '귀가 얇아서 후회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을 열었다.


이럴 땐 약간 민망할 정도의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시작하는 것이 좋다. 3년째 본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스타벅스 주식 이야기를 꺼내니 ‘우리 담임선생님 불쌍해ㅜ’ 하는 표정을 지으며 제 할 말을 떠올린다. 역시 줄줄이 손을 들었다.


-주사 맞으러 간다고 해놓고선 피 뽑으러 간 이야기.

-엄마가 강력 추천해서 어떤 메뉴를 시켰는데 먹어보니 자기 입맛에 안 맞았다는 이야기.

-'다이소에서 산 4,000원 치 물건으로 내방 인테리어 하는 법' 쇼츠를 보고 따라 했다 망한 이야기.


뜬금없이 준서가 '돈가스 먹으러 가자'라고 말한다. 맥락에 벗어난 이야기라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준서가 발표를 이어나갔다.


아빠가 돈가스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포경수술을 하러 병원에 갔어요.


옆에 있던 하윤이가 이야기를 거든다.


나는 고구마치즈돈가스 먹으러 가자였는데


남학생들은 좌우앞뒤로 몸의 각도를 틀어 눈빛을 주고받다 킥킥댔고, 여학생들은 크게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오므리다 얼굴이 붉어졌다. 몇몇 학생들은 아직 포경수술 이야기에는 근처도 못 가보았는지 눈만 동그랗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나는 부처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나귀를 팔러 간 부자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1교시가 끝났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귀가 얇아 후회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 더 당황스러웠을지 내기라도 하듯, 내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뽐을 내는 듯.


아직 각이 잡히지 않은 둥그런 어깨와 포동포동한 등. 옹기종기 모여 씰룩대는 모양새가 찌릿하게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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